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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선 전쟁을 치를 지라도
정로즈
2012. 4. 25. 11:09
| 집에선 전쟁을 치를 지라도... | 제비꽃 수필 산책 | 2011-05-20 18:10:59 |
| 제비꽃(essay9160) | http://cafe.munhwa.com/literarture/4906 ![]() |
버스 정류장에서 사람들 속에 섞여 있는데 중년과 노년 사이에 걸쳐 있는 듯한 부부의 대화가 귀에 들어 왔습니다. 남편은 얌전하고 말수가 적은데 비해, 아내는 ‘따따따' 총을 발사하는 것처럼 남자 분을 향해 직격탄을 날리며 기를 꺾어 놓더군요. 그 위세에 놀란 주위사람들이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돌렸으니까요. 대화의 내용을 잘은 모르겠으나 여러 이야기를 퉁명스럽게 쏟아내던 아주머닌, 아저씨가 뭐라고 몇 마디를 했더니 모르면 가만히 있으라고 눈을 흘기며 남의 시선을 살피는 예의 따윈 없었습니다. 계속 남편을 몰아세우며 ‘웬수’라는 말을 한숨과 함께 들이키며 내 뱉곤 합니다. 남자 분이 ‘웬수’로 불린 사연은 알 리가 없으나, 타고 갈 버스의 노선을 놓고 의견이 달랐던 모양입니다. 그리곤 손에 카드가 쥐어져 있었는데 ‘이 카드 한 장으로 두 사람의 교통비를 내면 된다’며 그것도 모르고 세상을 살았냐며 또 한 번의 면박을 줍니다. 잘 못 보면 구박으로 보일 만큼 강도가 높았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을 의식 않고 자기식대로 말을 내뱉는 아주머니를 보면서 괜히 내가 무안해졌습니다. 그래서 당하고 있는 아저씨가 미안해 할까봐 못 들은 척 하고 일부러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묶인 아내가 남편의 체면을 저토록 구기면서 말을 하면 뭐가 후련할까?에 생각에 모아지며, 죄인처럼 땅만 내려다보며 서 있는 아저씨가 안 돼 보였습니다. 길 위에서도 저러한데 집에선 오죽할까? 하는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지요. 흔히 우린 대화 속에서 모르면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2등은 한다는 말과 함께요. 그 말의 진위 속에는 윽박지름과 자존심을 뭉개는 비아냥도 섞여 있음을 알게 됩니다. 잘 모르면서 괜히 많이 아는 척을 한다거나 아는 체를 하는 상대가 못 마땅하게 여겨질 때, 가만히 있으면 2등 대우는 해 줄 텐데 왜 1등인 것처럼 설치냐는 투로 말의 흐름을 막는 것이지요. 철저하게 상대의 이야기를 묵살하는 아주머니가 그랬습니다. 귀찮아하는 말투로 남편을 다그치던 아주머니의 모습에서 미움이 쌓여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나이가 들면 여자가 점점 무섭고 용감하게 변한다는데 아주머닌 충분히 그 걸 증명해주더군요. 버스에 올라탈 때 휑하니 먼저 타면서 빨리 오라며 아이에게 재촉 하듯 소리를 질러댑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엄마를 놓치지 않으려고 졸졸 따라 다니는 것처럼, 큰 소리로 외치는 아내에게 한 마디 대꾸도 않고 말 잘 듣는 남편이 됩니다. 그렇게 버스에 오르는 뒷모습을 보니 몰라도 되는 남의 집 사연이 궁금해졌습니다. 그 아저씨는 분명 어떤 잘못을 하고 살면서 아주머니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거나, 미움을 품게 하는 원인 제공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요. 이쯤해서 나도 ‘모르면 가만히 있으라.’는 핀잔을 듣지 않으려면 잠깐 본 그 노부부의 모습을 확대 해석하거나 혼자 생각으로 판단하지 않아야겠지요. 다만 내가 얻은 결론은 여기에 이르게 됩니다. 아무리 상대가 밉고 또 미워서 어쩔 수 없더라도 남들이 보는 앞에서만은 분노의 분출을 삼가자는 것입니다. 집에선 전쟁을 치를 지라도 밖에서만은 상대의 체면을 지켜주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지요. 상대의 체면이 곧 자신의 체면이며 얼굴이니까요. 결국 부부는 서로를 향해 공격을 하고 또 해도 아무 것도 달라질 게 없다는 것입니다. 프랑스 속담 하나를 떠올려 봅니다. ‘어떤 남편을 알고 싶거든 그 아내를 연구하라.’인데 반대로 뒤집어서 아내를 알고 싶으면 남편을 연구하는 것도 당연한 이치겠지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