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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세계 출판계 평정한 ‘다빈치 코드’의 비법은?

정로즈 2012. 9. 2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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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세계 출판계 평정한 ‘다빈치 코드’의 비법은?
초대형 열풍 ‘해리포터’의 기세가 수그러들자 이번엔 ‘다 빈치 코드’ 태풍이다. 이 태풍은 세상에 나온 이래 10월 넷째 주까지 무려 82주 동안 그 세력이 꺾이지 않은 채 연일 세계 출판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가공할 만한 위력을 지닌 이 태풍은 한반도에도 여지없이 몰아닥쳤다. 미국 작가 댄 브라운(Dan Brown)이 그 태풍의 진앙지다.

38세의 평범한 교사였던 그는 ‘다 빈치 코드(The Da Vinci Code)’를 통해 “소설계의 빅뱅”으로 불리며 세계 소설시장의 권좌에 올랐다. 국내엔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이 ‘신예’는 그동안 여러 작품을 발표하면서 충분한 자질과 능력을 쌓아왔다. 댄 브라운은 컴퓨터 보안 프로그램을 풀기 위해 치열한 두뇌게임을 벌이는 스토리 ‘디지털 포트리스(Digital Fortress)’를 1998년 처음 발표한 데 이어, 북극에서 벌어지는 과학적 책략을 흥미롭게 그린 ‘디셉션 포인트(Deception Point)’를, 이어 인류의 목숨을 담보로 바티칸에서 벌어지는 과학과 종교의 대격돌을 그린 ‘천사와 악마(Angels & Demons)’를 선보인 바 있다. 그 다음으로 세상에 내놓은 것이 바로 “완벽한 블록버스터”라 추앙받는 ‘다 빈치 코드’다.

‘해리포터’ 판매량 앞질러

이 소설은 한국시장에 나온 지 3개월 만인 지난 10월 현재, 이미 5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훌쩍 넘겼다. 미국시장에서 팔린 부수는 이미 1000만부를 넘긴 지 오래다. 이 소설의 해외 판권은 이미 40여개국에 팔린 상태다. ‘다 빈치 코드’가 이처럼 주목을 받자 이번엔 댄 브라운의 전작들이 동시에 날개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다. ‘디지털 포트리스’는 처음 발표 당시 1만~2만부 가량이 겨우 팔리는 수준이었으나 지난 3월부터 탄력을 받기 시작, 미국에서 10월까지 7개월 만에 무려 200만부가 팔려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이것 외의 두 전작 소설 역시 새로운 주목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 이미 아마존닷컴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그 이름이 오른 지 한참이다. USA 투데이지는 ‘다 빈치 코드’가 같은 기간 내에 유일하게 ‘해리포터’ 시리즈의 판매량을 앞질렀다고 보도했다. 다 빈치 코드 열풍이 지구촌 전체로 이어지자 각 나라 언론들은 책의 내용과 관련된 기사를 앞다퉈 내보내기 시작했다.

‘다 빈치 코드’가 세상의 주목을 받자 이 소설과 관련한 책들도 줄지어 출간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으로는 미국 기독교서적 출판사인 넬슨사가 낸 ‘다 빈치 코드 깨부수기(Breaking the Da Vinci Code)’. 이 책은 소설 ‘다 빈치 코드’의 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다 빈치 코드 열풍은 여행·관광으로도 이어졌다. ‘다 빈치 코드’의 배경 중 하나인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엔 이 소설을 읽은 독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독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는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다 빈치의 그림을 직접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숨겨진 사실 끄집어내 파헤쳐

▲ '다 빈치 코드'의 작가 댄 브라운.
그렇다면 ‘다 빈치 코드’가 이처럼 세상을 들썩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다 빈치 코드’는 재미있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상황이 박진감 넘치게 전개돼 흥미진진하게 빠져든다. 뿐만 아니라 여러 예술가들의 미술품이나 기호학, 혹은 그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종교 분야의 비사(秘史) 등 인문적 교양이나 다양한 지적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도 한몫 한다. 게다가 ‘문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풍부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한없이 자극하고 있다.

이 책의 큰 특징 중 하나인 ‘사실성’도 빼놓을 수 없다. 소설에 등장하는 “오푸스 데이는 현재에도 실존하는 교파이며, 역시 현존하는 시온 수도회의 회원 중에는 아이작 뉴턴, 보티첼리, 빅토르 위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이름이 올라있다”는 충격적 내용의 표출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인류의 엄청난 비밀을 간직하고 여러 예술 장르를 통해 그 비밀을 인류에게 전하고 있다는 것.

댄 브라운은 자신이 묘사하고 있는 예술작품, 건물, 비밀 종교의식들이 “모두 사실”이라고 소설 머리에서 밝히고 있다. 저자가 사실이라고 말한 그 사실 때문에 세상이 더욱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소설은 다 빈치와 예수에 대한 그간의 숨겨진 사실들을 표면으로 끌어내, 그것을 살인사건이라는 허구적 장치와 맞물리게 하여 스토리를 끌어간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일련의 충격적인 사실들은 독자들을 더욱 정신차릴 수 없도록 만든다.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 오른편에 앉아 있는 이가 바로 예수의 아내 막달라 마리아다. 예수가 죽은 후 막달라 마리아가 프랑스로 도망쳐 예수의 아이를 낳았다. 교회는 이 사실을 감추기 위해 관련 문서들을 찾아 없애려 했다”는 등의 충격적 내용이 잇달아 ‘폭로(?)’ 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은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다. 발단은 루브르 박물관장인 자크 소니에르의 피살사건. 소설의 남자 주인공 로버트 랭던은 하버드대 기호학 교수로서 뛰어난 지식과 통찰력으로 복잡한 사건을 풀어나가는 인물이다. 여주인공인 소피 누뵈는 살해당한 소니에르의 손녀로 지적인 암호해독 전문가다.

이들은 모두 사건에 연루되어 자신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거대한 음모에 휘말리게 되고, 2000년 동안 짜맞춰진 비밀을 파헤치는 전방에 서게 된다. 그들은 이 숨막히는 여정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미술작품에 숨겨진 단서들을 숨가쁘게 추적하며 독자들을 사건 깊숙이 끌어들인다. 결국 루브르 박물관 관장인 자크 소니에르가 죽기 직전 암호로 전해준 ‘성배의 위치’를 찾아 나서는 게 전체의 큰 줄거리이다.

서울대 영문과 김성곤 교수는 출판 전문지 ‘기획회의’ 5호에서 “‘다 빈치 코드’는 결코 가벼운 추리소설이 아니라, 상당히 무겁고 심각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문학작품이다.… 이 정도 주제의식이라면 단지 추리소설이란 이유만으로 순수문단에서 폄하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에 등장하는 예수의 제자들은 전부 남성이지만, 그중 유난히 여성처럼 보이는 인물이 있다. 일부 종교사학자들은 오랫동안 이 인물을 두고 막달라 마리아라고 주장해 왔다.

지식·정보·흥미 곁들여진 소설 원해


이제는 소설을 찾는 세계 독자들의 패턴도 변하는 추세다. 흥미 위주의 패턴으로부터 흥미 위에 지식과 정보를 더한 소설을 찾아 읽는 패턴으로의 전환이다. 그래서 이제는 완전한 허구만으로의 소설이 아닌 사실(fact)과 실제(reality)가 함께 어우러진 소설을 선호한다. 결국 독자들은 허구적 소설 장치에 역사적 사실이나 진실을 보고 싶어하거나, 반대로 사실이나 진실의 틀에 흥미로운 허구적 장치를 덧댄 소설을 원한다. 이는 가끔 어떤 것이 사실이고 어떤 것이 허구인지 그 경계가 모호해져 소설 내용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기도 하겠지만, 사실과 허구를 가려낼 줄 아는 능력을 겸비하는 것 또한 이제는 독자의 몫이 되었다. ‘다 빈치 코드’와 비슷한 유형의 것으로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매튜 펄(Matthew Pearl)의 ‘단테클럽(The Dante Club)’이 있다. ‘인문 스릴러’로 불리기도 하는 이 소설은 “19세기 중엽 미국 문단의 문제점을 소재로 삼아 ‘장미의 이름’에 필적하는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매튜 펄은 ‘단테클럽’에서 댄 브라운과 마찬가지로 사실과 허구를 공존시키는 장치를 마련했다. 이 소설 속엔 19세기 중반 하버드대학을 주축으로 보스턴 문인 그룹을 형성했던 시인 롱펠로, 로월, 그리고 역사학자 조지 그린과 편집자 제임스 필즈 등 실제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단테클럽과 연관된 살인사건을 조사한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영문학에 대한 지식을 유감없이 선사해 준다. 펄은 ‘단테클럽’에 이어 내년에 ‘포의 그림자(The Poe Shadow)’를 선보일 예정이다.

요즘 독자들은 소설을 읽으면서 교양 쌓기를 원하며 지식과 정보를 동시에 원하는 것 같다. 한국 문단에서도 “소설시장이 죽었다”고 아우성만 칠 것이 아니다. 한 발 나아가 요즘 독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 ‘코드’를 읽어 거기 어울리는 소설을 내놓는 것이 더 의미있지 않을까?

이구용 임프리마코리아 에이전시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