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나의 시

[스크랩] | 대구시인 | 앉은뱅이꽃 / 정세나

정로즈 2012. 11. 9. 17:16

 

정세나(본명 鄭福順) 시인

1939년 대구 출생.

2005년《생각과느낌》등단

시집 : 『기도이게 하소서』,『숲속은 한 음절씩 눈을 뜬다』

 

 

 

 

앉은뱅이꽃

- 정세나

 

철마다 찾아오는

봄이련만

그때 그 바람은 아니었어요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나를

바람인 당신이

입맞춤 하였지요

 

그대 옆에서

불꽃처럼 확 피고 싶은 나는

노을빛에 그리움으로 지고 있어요

 

기약도 없는 바람을 기다리며

날마다 펑펑 쌓이는 이 적막을 쌓아

홀로 파르르 떨며 피고 지는

이 마음 아무도 모를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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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박

- 정세나

 

버스 정류장이 있는 길섶에서

풋고추랑, 애호박, 오이 무더기 놓고

고운 새댁이 딸아이를 끼고

 

살아보려는 희망 부풀리고 있다.

 

한 무더기 천 원에 가져올 행복은

무심한 사람들을 따라 사라지고

 

뙤약볕에 시든 천 원, 절반 뚝 잘라 주는

애간장 타는 환한 웃음 붙들고

배고픈 어린 것이 칭얼거린다.

 

내 처녀 적 남을 도와주고 싶었던 마음 어디 가고

간장종지에 빠진 짠순이 장바구니가

오늘따라 왜 이리 무거울까.

 

어둠이 밀려오는 길바닥에 나와 앉아 있는

모녀의 애호박 같은 삶,

에누리하여 남은 동전들이 연신

딸아이 울음소리를 낸다

 

 

 

 

점새

- 정세나

 

집 밖으로 나아가

그림을 그릴 수 없는 날은

네모난 방에서 꿈을 그린다

 

창밖의 푸른 풍경 끌어들이고

밝고 투명한 햇살도 가져와방안의 캔버스에 풀어놓고

점 하나 찍으면,

점은 곧 새가 되어 날아오른다.

 

자유를 열망하는 새의 날개 위에

훨훨 날아다니는 꿈을 덧칠한다.

새는 허공에서 퍼덕이다가

주저앉는다.

끝없는 작업의 외로운 몸짓으로

 

창밖을 그리워하는 꿈을 접고

나는 점 하나에 내 일생을 바쳐

내 사랑을 생생하게 불어넣기에

하루는 너무도 짧다.

 

캄캄한 메모난 방안에서 점 하나가

그리움이 일렁일 때마다

눈을 뜨고 날아오르는

나의 점새.

 

 

 

 

 

 

꽃처럼 피는 내 사랑

- 정세나

 

꽃은 피어서 지고

져서 다시 피는가

 

안타까운 사랑도 꽃처럼

한 순간에 피어나 떨어지는 것인가

 

아니, 활짝 피어나기 위해

고통도 이겨내는 개화開花의 사랑 눈

 

순간의 절정을 확 피워 올리면서

소리치는 사랑의 기쁨을

아직 듣지도 보지도 못하였을지라도

내 사랑하였으므로

나의 기쁨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대 침묵 속에

내 사랑을 밀어 넣고

꽃처럼 절정의 순간을 확 피우는

아름다운 나의 개안開眼이여

아름다운 나의 개화開花여

 

 

 

 

구절초

- 정세나

 

호젓한 못 둑에 앉아

산 그림자 품은 연둣빛 물속 바라보면

그대 얼굴이 구절초로

가만 가만 피어나네

 

늘 오고 싶은 만큼

내 마음을 비집던 그 시절

 

잊혀 지지 않는 모습이

잔잔하게 맴도는

옛 사랑의 그림자여

 

스산한 못 둑의 흰 꽃잎 속에

타는 노을빛

그대 모습도 보랏빛으로 물드네

 

 

 

 

모정

- 정세나

 

소중한 시절을 다 바쳐

보석보다 아름다운 넷 아아를 양육했었지

 

아이들이 달려오는 뜀박질 소리가

지금도 문밖에서 들려온다

 

이 풍진 세상에 시달려도

네 아이의 뜀박질 소리는 지금도 들려오고

가진 것 모두 주어도

오히려 부족했던 나는

오늘, 빈 쭉정이로 남았는가

 

해와 달이 무수히 다녀가고

바람이 문을 여닫고 할 때마다

“엄마”하며 달려오는

지금도 멀고 가까운

내 아이들의 정겨운 발자국소리

 

 

 

 

구상(構想)

- 정세나

 

봄은

비어있는 캔버스 위에서

아른아른 발자국 찍으며

두 팔을 펴고,

 

눈녹색(嫩綠色) 향기를 품으면

애순이 예쁘게 움트고

부드러운 바람결에

언뜻 언뜻 연분홍꽃물 적실 적에

 

내 눈은 수정처럼 맑아지고

내 가슴은 갓 열아홉처럼 설레이더니

 

한 뼘 정원 같은 캔버스에

화사한 벚꽃을 피웠는가

 

 

 

 

출처 : 오박사네 고금소총
글쓴이 : 목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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