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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있는 노인·곱게 늙어가는 노인

정로즈 2014. 2. 13. 21:51
<세상풍정> 교양 있는 노인·곱게 늙어가는 노인
                 윤승원 | ysw2350@hanmail.net  
  
윤승원
수필가·논설위원

지난 1월 23일자 ‘노인과 스마트폰’ 제하의 필자 칼럼을 읽고 몇 분이 의견을 주셨다. 대학교수를 지낸 분도 있고, 언론사에서 종사하셨던 분도 있다. 지금은 현역에서 물러나 건강하고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고 계신 분들이다. 지방 일간지에 실린 칼럼 한편도 예사로 지나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주실 만치 세상을 보는 ‘열정’만큼은 ‘만년 현역’이란 생각이 든다. 그 어르신들 말씀의 요지는 이렇다. 나이 든 것이 ‘벼슬’은 아니라는 것, 젊은이들이 ‘노인 대접’을 안 해 준다고 서운해 할 것도 없다는 것, 노인은 사회적 약자이니 언제나 보호만 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경로사상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앞세우면서 ‘노인위주’로만 생각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신세대 젊은이들의 행동양식을 곱지 않게만 볼 게 아니라 그들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노인 스스로도 공중예절 등에 있어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고령사회’가 되면서 노인 범죄도 늘고 있다. 노인 빈곤률이 45%수준으로 OECD 평균보다 3배나 높다보니, 생활고에 따른 범죄는 10년 동안 6.3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노인 범죄 증가는 노인들이 버림받고 있다고 느끼며 갖는 ‘분노’가 중요한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노후의 빈곤과 소외감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깊은 고민이고,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정부가 풀어가야 할 주요 정책과제이긴 하지만, 노인 스스로도 자존(自尊)을 지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더 이상 ‘어르신 대접’만 원할 게 아니라, (기력이 있는 한) 노인 자신도 존경 받을 수 있게 품위를 지켜야 한다는데 공감한다.

시내버스 이야기를 또 해야겠다. 어느 연세 지긋한 어르신이 ‘경로석’에 앉지 않고 꼿꼿하게 서서 간다. 어린 학생이 벌떡 일어나 자리를 권하는데도 털썩 주저앉지 않았다. 이 때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어르신이나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해 달라”는 멘트다. ‘권유’가 아니라 ‘반 강제적’인 뉘앙스가 풍긴다. 급기야 노인은 승객 모두 들어보라는 듯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기사 양반, 난 시내버스를 타면 가장 못 마땅한 게 저 안내방송이라오. 어르신께 자리를 양보하라는 저 음성안내 때문에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공중예절은 권유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자발적인 것이 돼야 해요. 왜 불특정다수를 향해 공연히 가시방석 만들어주듯 강요를 해요? 노인들도 불편해요. 난 저 음성안내 좀 제발 없애 주었으면 좋겠어요.”

완고하면서도 한편으론 공감이 가는 노인의 진지한 말씀에 승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교양’이란 무엇인가. ‘염치’란 무엇인가. 어르신이 가져야할 최소한의 품위와 에티켓은 무엇인가. 학생이 자리를 양보하면 교양 있는 어르신이라면 ‘냉큼’ 혹은 ‘털썩’ 자리에 앉지 않는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마치 ‘내 자리 내 놓으라’는 식으로 학생 옆에 가서 ‘끙끙’ 거리지도 않는다. 학생이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면 “고마워서 어쩌나, 학생도 피곤할 텐데, 미안하구려!”하면서 조심스레 자리에 않거나, “난 조금만 가면 돼요. 아직은 그냥 서서 갈만하오.”라면서 애써 자리를 사양하는 노인의 모습이야말로 ‘곱게 늙어가는’ 이 시대 교양 있는  노인으로 보인다.

선진국 국민이란 경제적인 부를 누리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하찮은 것일지라도 남에게 폐를 주지 않는 신사적인 태도를 갖는 것, 사소한 것일지라도 남에게 혜택을 받았으면 반드시 고마움을 표시할 줄 아는 양심과 품위가 반듯한 선비정신을 온전히 이어온 대한민국 노인들의 몸에 밴 아름다움이 아닐까.
연세 드신 것이 이른바 ‘벼슬’이 아니라면, 노인도 공경 받기에 앞서 겸손과 겸양지덕으로 몸을 낮추는 모습이야말로 곱게 늙어가는 노인의 상징이요, 존경받는 아름다운 노년의 풍모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