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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후회 없이 사랑하라
정로즈
2014. 9. 22.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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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후회 없이 사랑하라
癌 견딘 백살 넘은 매화나무는 맘속 절망을 희열로 變奏한다
새벽 禮佛 오던 순정한 연인은 사랑의 지고함을 일깨워준다
永劫을 살아도 못 올 인연에게 강요나 단절이 얼마나 덧없는가
새벽 禮佛 오던 순정한 연인은 사랑의 지고함을 일깨워준다
永劫을 살아도 못 올 인연에게 강요나 단절이 얼마나 덧없는가
- 惺全 스님·남해 용문사 주지
이미 죽음을 지척에 안은 매화나무는 얼마나 더 살아서 꽃을 피울 수가 있을까. 어쩌면 내년이나 후년이면 매화나무는 더 이상 꽃을 피울 수 없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다음 해에도 매화나무는 반쪽에 꽃을 피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반가웠다. 매화나무는 똑같이 절반 꽃을 피웠지만 전해는 슬픔으로 인해 꽃을 보지 못했고, 그다음 해에는 기쁨으로 인해 꽃을 보게 된 것이다.
올해도 매화나무는 가지의 반쪽에 움을 붉게 틔웠다. 눈발이 날리는 날에도 붉게 돋은 움이 꽃보다 더 예뻐 보인다. 분분히 날리는 눈발 속에서 붉게 돋은 움은 꽃을 꼭 피우겠다는 사랑의 약속처럼 다가왔다. 끈질기게 생명 활동을 하며 꽃을 피우는 나무의 힘은 꽃을 향한 사랑인지도 모른다.
나무 한 그루 앞에서 나는 마음의 변주(變奏)를 만난다. 실망이 기쁨으로, 그리고 기쁨이 다시 감사와 사랑으로 변하는 마음의 흐름 앞에서 사랑이 깊으면 실망이 기쁨과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친다. 사랑이 없을 때 실망은 좌절을 낳지만 사랑이 지극하면 실망이 기쁨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매화나무는 내게 사랑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있다.
얼마 전 절에 기도를 하겠다고 젊은 여성 한 분이 찾아왔다. 20대 중반의 세련된 여성이 기도를 하겠다고 산중(山中)의 절을 찾아온 것이 내게는 의외였다. 하지만 굳이 기도를 하려는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기도하는 법을 일러주고 지켜만 보았다. 하루 이틀, 그녀는 새벽 예불도 잘 나오고 기도도 제법 열심히 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산중 사찰의 생활을 그녀는 마치 이전에 해보기라도 한 사람처럼 잘해나갔다. 그래서 나는 가끔 그녀에게 출가해도 썩 잘할 수 있겠다고 말하고는 했다. 기도를 하면서 그녀는 무엇을 얻고자 한 것일까.
며칠이 지나서 나는 그녀의 기도 이유를 알게 되었다. 시아버지 될 분의 마음을 얻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의 시아버지 될 분은 독실한 불자(佛子)였는데 그녀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아들과 떨어져 있게 하기 위해서 그녀에게 깊은 산중에서 기도를 권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미움 없이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 마음이 안쓰럽고 대견했다.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사랑은 물과 같아서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바다가 된 지금 강요와 단절이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수천 생(生)을 반복한다 해도 지금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기는 어렵다. 그러니 지금 후회 없이 사랑하라. 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7세기경 인도의 스님이자 시인인 산티데바의 말씀을 그 두 사람에게 들려주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맺은 인연이란 얼마나 지중(至重)한 것인가. 그것보다 더 소중한 인연이 이 세상 어디에 다시 있겠는가. 그래서 사랑에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며칠 후 청년은 다시 절을 찾아왔고 사랑하는 사람을 데리고 떠났다. 그는 비로소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사랑의 소중한 가치를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매화나무는 온 겨울을 견디고서야 비로소 매화꽃을 피운다. 꽃에 대한 사랑이 있어 나무는 겨울 찬바람을 이겨내는 것이다. 매화꽃이 아름다운 이유이다. 사람들의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랑은 그렇게 모든 것을 바치는 헌신이다.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을 바쳐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우리 출가자들의 아침과 저녁의 맹서도 사랑이다.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사랑하자, 지금 후회 없이 사랑하자. 그러면 세상 어디엔들 아름다운 꽃이 피지 않으랴.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