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 위
유치환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憶年) 비정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의지의 시인이라고 불리우는 유치환의 특성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시이다.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는 선언에 이어 표현된 '바위'의 바위다운 속성은 사물 그 자체로서의 의미보다는 화자 자신이 견지하고 있는 어떤 의지적 태도를 표상한다.
'애련', '희로'같은 감정이나 '비와 바람'으로 표현된 가혹한 시련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초탈의 경지를 나타내는 것이 '바위'라고 하겠다. 외부의 자극에 대해 감정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려는 화자가 '비정'하기는 하지만 무정한 것은 아니다. 그는 그 시련을 안으로 다스리며, 자신을 채찍질하여 더욱 더 의지적 인간이 될 것을 다짐하고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생명체'가 지닌 모든 약점을 초극하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흐르는 구름은 그저 구름일 뿐이여, 우뢰 소리도 먼 곳에서 들려오는 한낱 소리에 불과할 뿐 화자의 마음은 동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위를 소재로 하여 절대적인 초월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결의를 노래한 작품으로, 그 의지에 걸맞게 단호하고 강인한 남성적 어조가 인상적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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