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리과원上里果園
서 정 주 徐廷柱
꽃밭은 그 향기만으로 볼진대 한강수(漢江水)나 낙동강(洛東江) 상류(上流)와도 같은 융융(隆隆)한 흐름이다. 그러나 그 낱낱의 얼골들로 볼진대 우리 조카딸년이나 그 조카딸년의 친구들의 우슴판과도 같은 굉장히 즐거운 웃음판이다.
세상에 이렇게도 타고난 기쁨을 찬란히 터트리는 몸뚱아리들이 또 어디 있는가. 더구나 서양에서 건너온 배나무의 어떤 것들은 머리나 가슴팍이 뿐만이 아니라 배와 허리와 다리 발굼치에 까지도 이뿐 꽃숭어리들을 달었다.
우리가 이것들을 사랑할려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묻혀서 누워있는 못 물과같이 저 아래 저것들을 때로 가냘프게도 떠러져 내리는 저 어린것들의 꽃잎사귀들을 우리 몸우에 받어라도 볼 것인가 아니면 먼 산(山)들과 나란히 마주 서서 이것들의 아침의 유두분면(油頭粉面)과 한낮의 춤과, 황혼(黃昏)의 어둠 속에 저것들이 자자들어 돌아 오는 아스라한 침잠(沈潛)을 지킬 것인가.
하여간 이 하나도 서러운것이 없는 것들 옆에서, 또 이것들을 서러워하는 미물(微物) 하나도 없는곳에서 우리는 서뿔리 우리어린것들에게 서름같은걸 가르치지 말일이다 저것을 축복(祝福)하는 때까치의 어느것 비비새의 어느것, 벌 나비의 어느것, 또는 저것들의 꽃봉오리와 꽃숭어리의 어느것에 대체 우리가 행용 나즉히 서로 주고받는 슬픔이란것이 기뜰리어 있단 말인가. 이것들의 초밤에의 완전귀소(完全歸巢)가 끝난뒤 어둠이 우리와 우리 어린것들과 산(山)과 냇물을 까마득히 덮을때가 되거든 우리는 차라리 우리어린것들에게 제일 가까운 곳의 별을 가리쳐 뵈일일이요. 제일 오래인 종(鍾)소리를 들릴 일이다.
임진(壬辰) 5월(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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