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나 일상

눈이 오면 나는 아이가 된다.

정로즈 2013. 1. 2. 18:47

 대구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린 해는 1953년으로 51cm의 적설량을 기록했다고 신문에서 읽었다.

그 시절 아침에 아버지와 일하는 김군과 함께 눈길을 내는 모습을 즐기면서 나는 어린탓인가 아니면

귀한 딸이여서인가 비도 들지 못하게 하여 신나게 보고만 있었다.

눈을 쳐낸 높이가 내 키만 하였다고 기억된다.

그리고 엄마가 마련한 놋화로의 숯불 위에서 보글보글 끌고 있는 돌솥 속의 된장이 먹음직했던 기

억도 떠올리고 맛있게 먹었던 추억은 먼 그리움으로 멀어져갔다......

 2012년 12월28일 오늘 두번째 내린 눈이12.cm의 적설량을 뉴스에서 보도한다.

 나는 눈이 오는 3분 거리의 배수지 공원을 찾았다. 배수지 공원은 참으로 고즈넉하고 아름답다. 겨울 나무엔 흰 눈이 소복소복 쌓이고 흰 눈 잎을 떨구고 있는 나뭇가지들은 제 각각의 개성이 돋보인다. 배수지의 배경도  선명해지고, 켜켜이 쌓이는 농담(濃淡)에 따라 하이얀 (무채색)겨울 숲 풍광을 만들어낸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아릿아릿 저려 오는 가슴으로 한 발자국 두 박자국 걷다보면 발자국마다. 내리는 눈이 설화(雪花)로 피어나는 듯하여 나는 동화속의 아이들처럼 좋아라 손뼉을 치고 주께 '참미 받으소서'하고 노래를 하며 오른다.

그러나 겨울나무들은 이렇게 큰 눈이 내리면, 어떤 나뭇가지들은 무겁게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지기도 하고 또는 뿌리가 깊지 않은 나무들은 넘어져 눕기도 할텐데...하고 잠시 생각도 하여보지만, 오히려 가득 쌓이는 눈이 솜 이불처럼 덮어주면 매서운 삭풍으로부터 보호를 받아 동해(凍害)를 잘 견딜 수 있어 겨우내 따듯한 봄이 다가오면 조금씩 조금씩 얼은 눈은 녹아 수분을 공급받아 가장 건조한 시기인 초봄에 새싹을 틔우는 희망으로 지금 말없이 포근히 내리는 눈을 맞고 있는 것이다.(우리나라에서 가장 강설량이 많은 울릉도에 식물상(植物相)이 제일 풍부한 것도 일정 부분 이 눈과 관련이 있다.)폭설이 오면 병해충을 막아 올 한 해 농사가 풍년이 된다고 하던 옛말이 있지 않은가 이렇게 쌓이는 눈을 맞고 참아내는 나무들처럼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이 세상을  잘 살아가는 것과 같다.  천진한 아이들은 내리는 눈을 반기며 가난한 울타리를 벗어나 하나 둘 모여

  빈 종이박스를 들고 나와 경사진 언덕에 설매타기할 수 있는 길을 다지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너무 반가워 그  곳으로 가려는  나를 보고 '미끄러져요 '라고 이구동성으로 소리친다. 그 아이들은 착한 아이들이다. 뉴스나 TV에서 보는 나쁜아이들과는 다르다고 나 혼자 중얼거리며 길이 있었던 곳을 더듬어간다. 발목위까지 쌓이는 눈을 푹푹 발자국을 찍으며 걸어가는 나의 마음이 어린 아이가 되는 것이 즐거운지 눈은 아프다고 말 못하고 고운 소리로 뽀도독뽀도독 노래를 부른다. 그 소리따라 나는 하얗게 눈치장하는 나무들을 카메라에 예쁘게 담았다. 나는 조금도 조심하지 않고 아이들처럼 뛰면서 좋아라 웃으면  눈은 나의 입에 서로 서로 다가와 입맞춤한다. 크게 많이 가진 것도 없는 내가 자연에 동화(同化)돼어 참으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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