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2.01 13:37
소설 '부활' - 모스크바, 시베리아
모 방송의 책읽기 프로그램에서 톨스토이의 '부활'을 다시 읽었다. 이른바 '명사의 서재' 비슷한 콘셉트였는데 흥미로운 건 이 책을 추천한 '명사'가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온 한 요리연구가였다는 사실이었다. 북한에서는 귀족 출신이었던 톨스토이보다 가난한 노동자 계급 출신이었던 도스토옙스키의 책을 조금 더 권장했다는 그녀의 말을 듣다가, '부활'이 북한에서 금서였다는 얘기도 접할 수 있었다('마르크스'의 '자본론'이 금서였다는 말이 흥미로웠다). 계급에 따라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는 책의 종류나 권수도 달라서 책이 귀한 그곳에서 읽었던 '부활'이 새삼 자신의 유년기를 떠오르게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금지도서였던 '부활'을 수업 시간에 몰래 읽다가 선생님에게 들켜 비판서를 써내야 했지만, 네플류도프와 카튜샤의 사랑의 장면에선 내내 가슴이 콩닥거렸다는 말을 하며 수줍게 웃었다.
사람들이 고전을 '다시' 읽는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젠가 이런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남들이 다 읽어야 한다고 하니까, 읽지 않고도 공연히 읽어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든다는 것. 다른 하나는 고전은 대부분 처음 읽기에 '실패한 책'이라는 점 때문이다.
시베리아의 추위는 참혹하다. 철부지 귀족 청년이었던 네플류도프는 모스크바의 모든 것을 버리고 참혹한 시베리아 유형지까지 걸어간다. 그의 정신적 부활을 향한 발돋움은 인간을 대신해 죽었던 메시아의 부활과 닿아 있다. / 조선일보 DB

'부활'의 주인공 네플류도프 공작은 살인 혐의를 받고 법정에 선 한 창녀의 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석하게 된다. 그런데 그녀는 한때 자신이 잠시 사랑하다 버렸던 마슬로바, 즉 카튜샤였다. 카튜샤는 이후 혼자 아이를 낳고 생계를 잇기 위해 창녀가 된 것이었다. 카튜샤는 단지 '살인의 의도가 없었음'이라는 말 하나를 전달하지 못한 재판관과 검사, 배심원들로 인해 죄 없이 시베리아 유형을 선고받는다. 네플류도프는 도덕적으로 무책임했던 자신의 생활을 반성하며 심한 죄책감을 갖게 되고 그녀에게 청혼하리라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는 카튜샤를 감옥에서 꺼내주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며 자신의 정신적 부활을 향한 발돋움을 시작한다.
이 소설을 읽다가 포기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하지만 읽기에 성공했다고 해도, 나는 분명 이것을 네플류도프와 카튜샤의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로 읽었을 것이다. 어째서 카튜샤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는지 의아해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읽는 '부활'은 내겐 철부지 귀족 청년이었던 네플류도프의 성장소설로 읽힌다. 그가 혹독한 모스크바의 추위를 뚫고, 더 참혹하고 광활한 시베리아 유형지까지 걸어가 갱생을 도모하는 장면은 말 그대로 한 인간이 '부활'하는 장면의 현현이다.
소설의 주인공이 내게 톨스토이의 자아로 보이는 것은 실제 그의 삶이 네플류도프와 비슷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톨스토이는 49세에 이르러 최고 걸작이라 불리는 '안나 카레니나'를 집필하고, 71세에 이르러 10년 만에 '부활'을 완성한다. '안나 카레니나'를 쓰고 난 즈음에 톨스토이는 세계관이 크게 바뀌는데, 자신이 잘못 살았다는 통렬한 심정으로 참회록을 쓰기에 이른다. 참회록 집필 후, 그는 위대한 베스트셀러 작가에서 전 인류에게 훈계하는 계몽주의적 스승으로 극적인 변환점을 맞는다.
한 인간이 자신의 삶과 문학을 일치시키려 이토록 발버둥친 역사는 별로 없었다. 그러나 그런 안간힘과 상관없이 그토록 자신이 지향한 인물과 점점 멀어져간 사람도 없었다. 톨스토이는 자신이 소설에서 비판하고 경멸했던 것들, 가령 도시의 환락과 무위도식, 사랑 없는 결혼, 거짓과 허위의 예술을 버리고 인간을 사랑하며 삶과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설파에 가까운 '설교'를 했다. 위대한 사상가이며 소설가 역시 끝없이 '흔들리는 인간'이었던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돌아온 탕아인 네플류도프의 삶을 관통하는 말에는 밑줄을 긋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이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미신의 하나는 인간은 각기 다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선인이라든가 악인, 현인, 어리석은 사람, 근면한 사람, 게으른 사람 등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을 그렇게 구분해 단정적으로 봐서는 안 된다. 저 사람은 악인일 때보다 선인일 때가 더 많다든가, 게으를 때보다 부지런할 때가 더 많다든가, 어리석을 때보다 똑똑할 때가 더 많다든가, 또는 그 반대로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한 인간을 두고서 당신을 성인이라든가 분별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에 대해선 당신은 악인이라든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해선 안 될 것이다…인간이란 흐르는 강물과 같다. 물은 어느 강에서든 흐른다는 데는 변함이 없으나 강 하나만 생각해보더라도 어느 지점은 좁고 물살이 빠른 반면, 넓고 물살이 느린 곳도 있다. 또 여기서는 맑기도 저기서는 탁하기도 하고, 차기도 따스하기도 하다. 인간도 이와 마찬가지다. 누구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성격의 온갖 요소를 조금씩은 가지고 있어 어느 경우 그중의 하나가 돌출하면 똑같은 한 사람이라고 해도 평소의 그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일 때가 있다."

●부활 - 1899년 발표.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와 더불어 톨스토이 3대 작품 중 하나로 유명하다. 예술적으로 원숙하고 완벽한 심리묘사와 더불어 당시의 사회조직이나 법률의 허점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이 작품에서 그리스 정교(正敎)를 비판한 것이 원인이 되어, 그는 1901년 종무부(宗務部)로부터 파문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