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월롱역 - 김성대

정로즈 2013. 2. 14. 21:44

[오피니언] 새로나온 詩 )
월롱역 - 김성대 -
 
오래된 창고는 비밀스럽다

창고를 에워싼 갈대들이 수런거리고

꽃들은 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다

눈 뜨고 자는 달개비 앞을

발꿈치 들고 지나는 달빛

먼지 쌓인 비밀이 달빛에 살짝 드러난다

이따금 기차가 지나가면서

추억을 완행 연주하고

바람은 한 소절씩 베어 넘긴다



언젠가는 비밀도 곰팡이 핀다

비밀을 지키려는 생각

다시 들추길 바라는 마음도

언젠가는 곰팡이 핀다

타다 남은 양초처럼 뭉툭해진다

달을 희롱하듯

달이 꽃을 희롱하고 꽃이

달을 희롱하듯

한 시절 놀았으면 그뿐



창고에 걸린 달빛이 촛불처럼 떨린다

잠시 푸른곰팡이에 귀기 어리는 듯하지만

저 달에 단풍 들면

곧 기차도 뭉툭해질 것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시집 ‘사막 식당’(창비刊)에서
-약력 : 1972년 강원 인제 생, 2005년 창비신인시인상으로 등단, 제29회 김수영문학상 수상
문화일보에서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안에  (0) 2013.02.26
박완서의 시  (0) 2013.02.16
사진… 지금은 멀리 떠난 아버지를 만난다  (0) 2013.02.08
고호  (0) 2012.12.30
세연정,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를 낳은 곳  (0) 2012.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