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그대로 수록하였음. 한자는 괄호 속에 넣었고, 전달이 가능한 오자는 원표기대로 하였으나, 전달이 불명한 오자는 수정하되 원표기자를 괄호 속에 넣었습니다-박제천 교정.
대 화 對話
신 석 정 辛 夕 汀
모란 순이
새끼 손가락 만치 자랐읍데다
너는 그렇게도
봄을 기두렸고나,
산(山)수유 꽃이
벌써 시나브로 지던데요
글쎄
봄은 오자 또 떠나는게지
그러기에 우린 아직도
경칩(驚蟄)이 먼 지역(地域)의 주민(住民)인가 봅니다
............................................
............................................
산山 같은 침묵(沈黙)이 흐른다.
체념 諦念
김달진 金達鎭
봄 안개 자욱히 나린
밤 거리 가등(街燈)은 서러워 서러워
깊은 서름을 눈물처럼 먹음었다
마음을 앓는 너의 아스라한 눈동자는
빛나는 웃음보다 아름다워라
몰려가고 오는 사람 구름처럼 흐르고
청춘(靑春)도 노래도 바람처럼 흐르고
오로지 먼 하늘가로 귀 기우리는 응시(凝視)
혼자 정열(情熱)의 등불을 다를 뿐
내, 너 그림자 앞에 서노니, 먼 사람아
우리는 진정 비수(悲愁)에 사는 운명(運命)
다채(多彩)로운 행복(幸福)을 삼가고
견디기보다 큰 괴롬이면
멀리 깊은 산(山) 구름 속에 들어가
몰래 피었다 떨어진 꽃 잎을 주어
싸늘한 입술을 맞추어보라
상리과원上里果園
서 정 주 徐廷柱
꽃밭은 그 향기만으로 볼진대 한강수(漢江水)나 낙동강(洛東江) 상류(上流)와도 같은 융융(隆隆)한 흐름이다. 그러나 그 낱낱의 얼골들로 볼진대 우리 조카딸년이나 그 조카딸년의 친구들의 우슴판과도 같은 굉장히 즐거운 웃음판이다.
세상에 이렇게도 타고난 기쁨을 찬란히 터트리는 몸뚱아리들이 또 어디 있는가. 더구나 서양에서 건너온 배나무의 어떤 것들은 머리나 가슴팍이 뿐만이 아니라 배와 허리와 다리 발굼치에 까지도 이뿐 꽃숭어리들을 달었다.
우리가 이것들을 사랑할려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묻혀서 누워있는 못 물과같이 저 아래 저것들을 때로 가냘프게도 떠러져 내리는 저 어린것들의 꽃잎사귀들을 우리 몸우에 받어라도 볼 것인가 아니면 먼 산(山)들과 나란히 마주 서서 이것들의 아침의 유두분면(油頭粉面)과 한낮의 춤과, 황혼(黃昏)의 어둠 속에 저것들이 자자들어 돌아 오는 아스라한 침잠(沈潛)을 지킬 것인가.
하여간 이 하나도 서러운것이 없는 것들 옆에서, 또 이것들을 서러워하는 미물(微物) 하나도 없는곳에서 우리는 서뿔리 우리어린것들에게 서름같은걸 가르치지 말일이다 저것을 축복(祝福)하는 때까치의 어느것 비비새의 어느것, 벌 나비의 어느것, 또는 저것들의 꽃봉오리와 꽃숭어리의 어느것에 대체 우리가 행용 나즉히 서로 주고받는 슬픔이란것이 기뜰리어 있단 말인가. 이것들의 초밤에의 완전귀소(完全歸巢)가 끝난뒤 어둠이 우리와 우리 어린것들과 산(山)과 냇물을 까마득히 덮을때가 되거든 우리는 차라리 우리어린것들에게 제일 가까운 곳의 별을 가리쳐 뵈일일이요. 제일 오래인 종(鍾)소리를 들릴 일이다.
임진(壬辰) 5월(月)
편지
조 지 훈 趙芝薰
아무리 깨여지고 부서진들 하나 모래알이야 되지않겠습니까. 석탑(石塔)을 어루만질 때 손끝에 묻는 그 가루 같이 슬프게 보드라운 가루가 되어도 한(恨)이 없겠습니다.
촛불처럼 불길에 녹은 가슴이 굳(굼)어서 바위가 되던 날 우리는 그 차운 비바람에 떨어져 나온 분신(分身)이올시다 우주(宇宙)의 한알 모래 자꾸 작아저도 나는 끝내 그의 모습이올시다.
고향은 없습니다. 기다리는 임이 있습니다. 지극한 소망에 불이 붙어 이몸이 영영 살아져 버리는 날이래도 임은 언제나 만나뵈올 날이 있어야 하옵니다. 이렇게 아무렇게 거리에 바려져 있는 것도 임의 소식을 아는 이의 발밑에라도 밟히고 싶은 뜻이옵니다.
나는 자꾸 작아지옵니다. 커다란 바위덩이가 꽃앞으로 바람에 날리는 날을 보십시오. 저 푸른 하늘가에 피(되어) 있는 꽃잎들도 몇 억겁(億劫)을 닦아온 조약돌의 화신(化身)이올시다. 이렇게 내가 아무렇게나 바려져 있는 것도 스스로 움지기는 생명
이 되고자함이올시다.
출렁이는 파도(波濤)속에 감기는 바위 내 어머니 품에 안겨 내 태초(太初)의 모습을 환상(幻想)하는 조개가 되겠다. 아-- 나는 조약돌 나는 꽃이팔 그리고 또 나는 꽃조개 .
양 지
최 재 형 崔載亨
양지짝에 앉으면
인생(人生)이 행결 따뜻해 온다.
어렸을댄 헐벗고 배곺아도
항상 즐겁든 양지
나는 혼자
오래 동안 그늘로 쫓기어 왔다
여수(旅愁)는 절로
녹아 나리고
차라리 울수도 없는
이 막다른 골목에서
눈부신 해ㅅ빛만이
옛날의 인정(人情)이었다.
외로운이여 오라
.............................
와서 잠간 해바라기 하며
쉬여서 가자
이렇게 양지짝에 앉으면
세상이 행결 정(情)다워진다
내 고 향
이 원 섭 李元燮
내 고향을 뭇지 마라
사실 나는 난처 하구나
그의 흐릿한 한모의 윤곽마저
참말이지 나는 가지지 못 한단다
거기에 피는 그 많은 꽃들 속의
보잘것 없는 어느 한송이의
대단 찮이 풍기는 그러한 향기조차
참말이지 나는 가지지 못 한단다.
쫓기어 났단다
알겠느냐?
어느 슬픈 아침이 있었단다.
꿈처럼 아득한 어느 날이었단다.
내 고향을 뭇지마라
그에 대한 추억마저 금지되어
꽃동산 더럽힌 묏대지 모양
참말이지 나는 쫓기어 났단다.
도서 기행 島嶼紀行
이 동 주 李東柱
여기 오면 눈들이 젖어있다
앰하게 밀려온 왕고(往古)의 사슴떼.
눈섭아래 그늘을 지어 노상 하늘을 살핀다. 바위는 씻겨
거울 같은 모래알, 촉루(觸髏)도 아름답기 바레진 소라 껍질......
꽃이래야 동백나무 초롱을 켜고 다직하면 들국화
억새풀에 숨어 웃네.
도랑치마에 손 발이 큰 안악들은 미역을 따고
황소 우름의 지애비는 창살로 바다를 노린다
가시네는 서되 쌀에 머리를 트는데
봄이 되면 마 소와 도란 도란 풀잎을 뜯고 억세게
사랑은 익어 아들 딸 푹 푹 쏟는다
머리 풀고 우름 울면 산 넘어 동네가, 왼통 바늘을 놓고
큰 일 친 차일(遮日) 밑에 동이 술을 여나른다.
아직도 말정하게 동화(童話)가 새순 돋듯 살아 있다.
註 앰 하다--억울하다
바늘을 놓고--喪事
하 늘
최 인 희 崔寅熙
먼 하늘이
제한(制限)된 창(窓)에 있다
지나간 꿈의 그림자가 있다.
파아란 종이 위에
생각이 떠오르다 진다
2층(二層) 커-텐 제친 창(窓) 뒤에
치솟아 꽃이 웃고 왔으면 ---
먼 하늘이 부착(附着)된 창(窓)에
무언가 그림자 있어
눈을 뜬채로
눈 속에 움틀거리는 것
하늘에 이름 모를 한 마리 벌레
기어가는 꼭두각씨!
자연(紫煙)이 피어서 덮으면
하늘과 내가 꼭두각씨 뛰놀든 뒤에 숨는다
꿈의 커-텐이 닫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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