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경이
변길섭
한나라 마무馬武 장군 어명 받들어 사막 건너고 또 사막 건너 지친 장졸들 얼마나 굶었는지
기억도 없는 몸뚱어리 이끌고 전진 또 전진 그 숱한 날들 황야에서 보내고 나니 식량도 물도
동나고 없던 차에 마무 장군 용단 내려 회군하나 그만 습열병에 걸려 말도 사람도 피오줌만
누고 눈은 쑥 들어가고 아랫배는 팅팅 부어올라 목말라 죽고 굶어 죽고 어쩌리오 어쩌리오
한 병사 장군 명 어기고 스스로 먹이 찾으라 말 풀 풀어주었더니 이틀 지나 생기 돌고 피오
줌 뚝 그쳤다지 않나 말이 뜯어 먹던 풀 이름 모를 풀이었으나 밑 가야 본전 병사들에게도
국 끓여 먹이니 말들처럼 이틀 지나 멀쩡해졌다네 군율 어긴 병사라도 높이 사는 한무 장군도
이름 모를 풀이라 수레바퀴 앞에서 처음 발견했다 하여 차전초車前草라 그 씨 당연히 차전자
車前子라 이름 지었다 하네
한나라 어떤 효자 여읜 아비 보고 싶어 백일기도 드렸는데 백발노인 차전자車前子 기름 불
밝히면 여읜 아비 볼 수 있다하여 아비 보고 싶은 마음에 백발노인 말 따르니 퉁퉁 부어 썩어
가는 아비 제사상 머리에 앉아 있더라네 기겁하여 두 번 다시 아비 뵙기를 원치 않았다 하니
저승에 있는 사람도 보게 하는 신통력 지닌 풀이라 하지 않던가
대장이나 소장도 간장도 신장도 방광도 요도도 어디 닿지 않는 데가 있어야지 만병통치가 바
로 이게 아니던가
참 가치도 모르면서 흔하디흔하다고 업신여기고, 약도 안 되는 것들만 귀히 여기고 있으니 사
람들이 참으로 짠하이 짠해 오솔 길이거나 시멘트나 아스콘 포장이 아닌 어느 길에서라도 숱한
발에 밟히면서 자라는 질경이 있지 인적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깊은 산속에서 귀하게 자란 산삼
도 아니고 새벽이슬이나 먹고 자라난 난초도 아니야 굳이 사람이 그리도 짓밟아 대는, 그 뿐이
던가 경운기 퇵퇵 거리며 억누르는 길에 자리 틀어 짓밟히면 짓밟힐수록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강해지면서 고상한 것만 쫓아다니는 것들 보란 듯이 널리널리 퍼져나가 서로 어깨 걸고 무리 지
어 자라난 쓸모없이 보이는 이 풀 인삼 녹용보다 서열 저 위라네
아무리 독한 제초제라도 뿌려보라지 며칠 지나면 툭툭 털고 큰 기지개 켜며 새싹 틔워 삼년 가
뭄 뙤약볕에도 말라 죽지 않으며 차바퀴가 지날지라도 더욱 뜨거운 가슴으로 쑥이며 토끼풀이랑
함께 살아야한다고 여기서 쑥 저기서 쑥 솟아오른 그 모습 오죽이나 목숨 질겼으면 질경이가 되었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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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 전라남도 장흥 출생.
조선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조대여고와 조대부고에서 근무하다 2012년 퇴임함.
2007년『문학예술』신인상 수상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잡초를 뽑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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