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현 이화여대 교수·문학평론가
"여자 없는 남자들에게 세계란 광대하고 통절한 혼합이며, 그건 그대로 고스란히 달의 뒷면이다." 이토록 촉촉한 정서를 담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소설집은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 종합 1위 자리를 연속 2주째 차지하고 있다. '여자 없는 남자들'이라는 책 제목 자체가 제재이자 주제이다. 여성이 깊은 상처를 주면서 남성을 떠나간다. 남겨진 남성은 마치 거세된 듯이 살아간다. 중년이니까 사랑은 더욱 어렵고, 그로 인해 의외로 연약한 남성의 삶도 심하게 울퉁불퉁해진다. 내용이 이러니 20대 여성 위주였던 하루키 소설의 독자층이 30대 남성으로 확대되었다는 통계도 발표되었다.
왜 남성은 여성으로 인해 상처를 입는가. 소설 속에서 여성은 신비롭고 초현실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현실에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현실을 무효로 만들어주는 특수한 시간'을 제공해주는 영적(靈的) 존재이기 때문이다. 미인이 아닌 여성의 군살 붙은 몸매에서도 정신성이 배어 나온다. 그래서 모호하지만 절대적이다. 이런 여성을 잃는다면 당연히 세상 전부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문제는 이토록 사랑받는데도 소설 속의 여성이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차피 가질 수 없는 '그림의 떡'에 가깝거나 다가가면 오히려 볼 수 없는 '풍경'의 이미지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맥락은 전혀 다르지만 TV 예능 프로그램 '나는 남자다'에도 여성은 없다. 대한민국 최초의 '남자들만의 소셜 클럽'임을 표방하면서 남성들끼리 비밀을 나누자고 초대한다. 가령 예비신랑이나 연하남의 심리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매회 '여신(女神)'들이 등장해서 남성은 잘 모르는 여성의 심리를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속을 알 수 없는 여성의 연애 심리를 주로 파헤치는 '마녀사냥' 같은 프로그램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여성은 보지 말라는 광고는 호기심을 자극해 더 보게 하려는 전략에 불과하다. 여성을 존중해주는 듯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여성 심리에 대한 남성들의 공감으로 결국에는 흘러간다. 여성이 진짜로 궁금해하는 남성의 심리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이런 '여자 없는 남자들'의 경우를 여성의 '부재(不在)'로 오히려 그 '존재'를 증명해주는 긍정적 사례로 간주하며 맘 편하게 즐길 수도 있다. 어차피 소설이고 예능 프로그램이니까. 그래도 뭔가 불편하다. 하루키 소설 속 여성은 지나치게 신비화됨으로써 현실로부터 배제된다. 심지어 불쌍한 남성에게 상처만 주는 몰인정한 가해자거나 남성의 실존 추구를 위한 매개물에 불과하다는 피해의식을 조장할 수도 있다. '나는 남자다'에서의 여성도 남성의 심리를 소비하려고만 하는 관음증적 주체로 축소된다. 혹은 남성다운 남성을 만들어주기 위한 코디네이터로서의 보조적 역할에만 머물기도 한다.
경제계에서는 경력 단절 여성에 대한 배려 등을 통해 '위미노믹스(womenomics)'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 16일에는 공공기관 여성관리자 확대 목표제를 올해 안에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여성에게 불리한 유리 천장이 깨지고 있다는 징표들이다. 그럼에도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듯이 이미 충분하다고 느낄 때까지는 충분한 게 아니다. 지금처럼 유리 천장이 점점 사라지는 것처럼 보일 때 오히려 더 뚫기 힘든 유리 천장이 새로이 생길 수 있다. 때문에 앞으로는 착시 현상을 경계하면서 이론보다는 실천을, 양보다는 질을 더욱 점검하고 관리해야 한다. 당연히 여성만을 위한 것도, 여성만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여자 없는 남자들'이 보내는 위험하면서도 매력적인 유혹을 여성들이 먼저 닻이 아닌 돛으로 바꾸려고 노력하자. 그래야 당당하게 '남자 있는 여자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