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장鳥葬 / 문정희
사막에서 시신을 쪼아 먹는 새를 본 후로는
세상의 모든 새들이 육친으로 보인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내 살과 피는
새의 눈처럼 날카롭고 의뭉하다
아무리 씻어도 죄 냄새가 난다
입술에 묻은 핏빛 슬픔과
검은 고독으로
시를 쓴다
살덩이로 사는 한 그림자를 벗어날 수 없다
눈알은 불안으로 흔들리고
날개는 상처로 무겁기만 하다
발자국마다 따라오는 무덤을 끌고
그래 가자! 나의 육친
사랑하는 나의 육신의 악마여
온몸을 으깨며 추락하는 빗물로 땅에 떨어져
결국 흙의 이빨에 물어뜯기고 말
나는 나의 시신을 쪼아 먹는
한 마리의 쫓기는 검은 새이다
여시如是 / 문태준
백화百花가 지는 날 마애불을 보고 왔습니다 마애불은 밝은 곳과 어둔 곳의 경계가 사라졌습니다 눈두덩과 눈, 콧부리와 볼, 입술과 인중, 목과 턱선의 경계가 사라졌습니다 안면의 윤곽이 얇은 미소처럼 넓적하게 펴져 돌 위에 흐릿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기도객들은 그 마애불에 곡식을 바치고 몇 번이고 거듭 절을 올렸습니다 집에 돌아와 깊은 밤에 홀로 누워 있을 때 마애불이 떠올랐습니다 내 이마와 눈두덩과 양쪽 볼과 입가에 떠올랐습니다 내 어느 반석에 마애불이 있는지 찾았으나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온데간데없이 다만 내 위로 무엇인가 희미하게 쓸려 흘러가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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