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스크랩] + 얼굴 / 박인환

정로즈 2017. 4. 20. 11:23



사슴/김환기 金煥基(1913-1974)


          + 세월이 가면 / 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날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취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항아리와 시/김환기 金煥基(1913-1974)

        + 얼굴 / 박인환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길을 걷고 살면 무엇하나
        꽃이 내가 아니듯
        내가 꽃이 될 수 없는 지금
        물빛 눈매을 닮은
        한마리의 외로운 학으로 산들 무엇하나
        사랑하기 이전부터
        기다림을 배워버린 습성으로 인해
        온 밤에 비가 내리고 이젠 내 얼굴에도
        강물이 흐른다
        가슴에 돌담 쌓고
        손 흔들던 기억보다 간절한 것은
        보고 싶다는 단 한마디
        먼지 나는 골목을 돌아서다가
        언뜻 만나서 스쳐간 바람처럼
        쉽게 잊혀져버린 얼굴이 아닌 다음에야
        신기루의 이야기도 아니고
        하늘을 돌아 떨어진 별의 이야기도 아니고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雲鈺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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