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스크랩] "아직 면죄부를 준 건 아니다"

정로즈 2010. 9. 8. 13:26

 

 "아직 면죄부를 준 건 아니다"

친일인명사전에서 유치환 이름은 빠졌다
그러나 끝이 아니다
그들은 어떻게든 '친일파'를 만들기 위해 혈안이 돼있다

 

 

경남 통영시내 한복판에는 통영중앙우체국이 있다. 입구에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라는 청마(靑馬) 유치환 시인의 '행복' 시비(詩碑)가 서있다.

청마는 해방이 되자 고향으로 돌아와 통영여고 국어교사가 됐다. 이때 함께 근무하던 이영도 시조시인을 연모했다. 청마는 38세, 이영도는 29세였다. 요즘 '사랑'과는 달랐다. 그는 1967년 교통사고로 숨질 때까지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편지를 썼다. 5000통이 넘었다고 한다. '에메랄드빛 하늘'을 쳐다보며 바로 이 통영중앙우체국에서 부쳤다.

그래서 통영의 문인들이 주축이 돼 이 우체국의 이름을 '청마우체국'으로 개명하자는 운동을 벌였다. 비록 '편지가 죽은' 시대가 됐지만, 매일 연서(戀書)를 썼던 청마를 따라서, 누군가가 여기로 와서 그렇게 할 것이다. 외지의 청춘남녀들은 사랑의 편지를 부치기 위해 오고, 어쩌면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중년 인생들도 과거의 아련한 추억으로 여기서 몰래 편지를 쓸지 모른다.

이런 낭만을 만든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통영시청이나 통영사람들 대부분이 '청마우체국'을 보고 싶어했다. 2004년 정보통신부에 우체국 개명 신청서를 내게 된 것이다. 좌파 이념의 '탈레반'들이 전면에 나선 노무현 정권 시절이었다.

그 소식에 지역 내의 일부 시민단체와 학자들이 "청마는 친일파"라며 들고 일어났다. 일제시대 청마가 써온 숱한 시들 중에서 3편이 좀 수상쩍고, 신문에 기고한 원고지 1장 반 분량의 '대동아전쟁과 문필가의 각오'로 친일파의 진면목이 드러났다는 주장이었다. '청마 친일에 대한 학술토론대회'까지 열려 외부 학자들도 가세했다. 몇년간 갑론을박했지만, 이들이 '원하는' 친일의 증거는 더 이상 없었다. 그러자 "당시 청마가 살았던 만주 땅에서 발간된 신문을 지구 끝까지 뒤져서라도 증거를 찾겠다"는 말도 나왔다.

어쨌든 '완장' 차고 설치는 이들의 눈치를 살폈을 정보통신부는 "청마의 친일 시비가 명백히 가려질 때까지 '청마우체국'으로의 개명 결정 여부를 기다리겠다"고 답변했다.

'청마가 친일파냐 아니냐'의 판정을 누가 내릴지는 다 알고 있다. 우선은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는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의 권한이었다. 이 사전에 이름이 올라가는 순간 자동으로 친일파다. '시일야방성대곡'의 항일(抗日) 시론을 남긴 장지연,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6ㆍ25 때 육군참모총장으로 북의 침략에 맞선 백선엽, 박정희 전 대통령까지 이렇게 '친일파'가 됐다. 얼마 전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에 4389명의 그런 이름이 올랐다.

그런데 '표적이 됐던' 청마의 이름은 이 친일인명사전에서 빠져있었다. 통영시 공무원들과 문인들이 상경해, 소위 영향력을 행사하던 민예총, 민족문제연구소, 친일반민족특별위원회 등을 돌며 '청마 친일 이력 반박 자료'를 돌리고 따진 결과였다. 청마를 지키기 위한 힘겨운 총력 투쟁을 했던 것이다. 정해룡 통영예총회장은 "이들 세력과 싸우지 않고 그냥 손 놓고만 있었다면 청마도 친일사전 명단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했다.

드디어 청마는 친일 혐의를 훌훌 털고 자유로워진 것처럼 보였다. '청마우체국'으로의 개명 운동을 재개할 참이었다. 이와 관련해, 한 인터넷매체의 기사를 통한 민족문제연구소의 반응은 이랬다.

"이번 친일인명사전에 청마가 수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친일인사가 아닌 것은 아니다.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어 더 조사를 하려는 것이지, 결코 '면죄부'가 주어진 게 아니다."

현재로는 청마의 친일 혐의 확증이 어려워서 봐줬을 뿐, 앞으로 계속해서 물증을 찾겠다는 답변이었다. 끝끝내 물증을 찾아 청마가 친일 혐의를 벗을 수 없게 만들겠다는 뜻도 된다. 투철한 사명의식일까. 어떡하든 친일파를 한명이라도 더 만들겠다고 혈안이 된 이들의 '섬뜩한 얼굴'을 나는 봤을 뿐이다.

이들은 친일파의 낙인을 찍을 수도, 면죄부를 발급할 수도 있는 권력을 당연하게 휘두르고 있다. 그러나 도대체 누가 이들에게 그런 권력을 주고 역사 해석의 독점권을 부여했는지는 기억할 수 없다.

정권이 바뀌어도, 이들 세력은 여전히 우리의 실제적인 삶을 지배한다. '정의'를 내세우는 이들의 언변은 솔깃하지만, 역사와 인간에 대한 이들의 시각과 행동은 독선적이거나 '전체주의적'이다. 이들과 대결하지 않는 한 자유로운 정신과 휴머니즘은 설 자리를 잃을지 모른다.

정치 권력이 바깥으로 보이는 대단위 토목공사에 몰두하는 동안, 우리 사회 내부는 계속 이들에게 조금씩 끌려가고 있다. 진정한 지배는 언제나 문화와 이념, 머리를 지배하는 것이다. 

 [조선일보/최보식 칼럼]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Xiang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