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스크랩] 휘트먼의 풀잎(Leaves of Grass)

정로즈 2010. 9. 12. 18:04

 
 휘트먼의 잎 · Leaves of Grass
· 1855年 序文



인생은 당신이 배우는 대로 형성되는 학교이다.

당신의 현재 생활은 책 속의 한 장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은 지나간 장들을 썼고, 뒤의 장들을 써나갈 것이다.
당신이 당신 자신의 저자이다.
사람이 자기 조국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왜 국경에서 멈추는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당신의 사상을 하늘 위에
불로 새겨놓은 것처럼 그렇게 사고하라.
진실로 그렇게 하라.

온 세상이 단 하나의 귀만으로 당신의 말을 들으려고 하는 듯이
그렇게 말하라. 진실로 그렇게 하라.

당신의 모든 행위가 당신의 머리 위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행동하라.
진실로 그렇게 하라.

당신의 신이 존재를 확인받기 위해 당신을 필요로 하듯이 살아라.
진실로 그린� 하라.

땅과 태양과 동물들을 사랑하라. 부를 경멸하라.
원하는 모든 이에게 자선을 베풀라.
어리석고 제정신이 아닌 일에 맞서라.
당신의 수입과 노동을 다른 사람을 위한 일에 돌려라.
신에 대하여 논쟁하지 말라.
사람들에게는 참고 너그럽게 대하라.
당신이 모르는 것, 알 수 없는 것 또는
사람 수가 많든 적든 그들에게 머리를 숙여라.
지식은 갖추지 못했으나 당신을 감동시키는 사람들,
젊은이들, 가족의 어머니들과 함께 가라.
자유롭게 살면서 당신 생애의 모든 해, 모든 계절,
산과 들에 있는 이 나뭇잎들을 음미하라.
학교, 교회, 책에서 들은 모든 것을 다시 검토하라.
당신의 영혼을 모욕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멀리하라.



하늘을 뒤덮고 있던
회색장막이 걷힌 주말 오후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눈부신 햇살을 바라보며
자연의 妙 (Nature's engineering) 를 음미하다




휘트먼(Walt Whitman:1855-92)의 유명한 시집 풀잎 [Leaves of Grass]

문학에 대해 전문교육을 한번도 받지 못한 휘트먼의
문학 세계에는 놀라우리 만큼 일관된 질서가 흐르고 있었고
이 일관된 질서는 자연이라는 테마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휘트먼은 자연주의자는 결코 아니다.
자연과 인간의 공명된 삶을 의도한 글이 아니라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관계를
자연의 조화와 변화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휘트먼의 풀잎에는 자연(Nature)를 단 한번도 보통명사로 사용하지 않는다.
왜소한 체구의 자연(nature)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를 무화시킬 정도로 광활하고 드넓고 깊은 자연(Nature)이다.
이러한 자연을 꾸밈없이(natural), 있는 그대로(naturally)로 묘사하며
그 안에 감추어져 있는 인간의 복잡다단한 삶을 일갈하고 있다.

그래서 휘트먼은 의미하는 詩보다는
존재하는 시의 미학에 깊이 경도(傾倒)하여
지극히 이상적이기도, 그렇다고 지극히 현실적이지도 않은
존재자체를 설명하는데 큰 목적을 두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그는 작고, 어둡고, 거무튀튀한 우리 삶의 단면에 드리운 그늘을
크고, 밝고, 아름답게 탈바꿈시켜 우리를 새로운 구원의 빛으로 인도해준다.

혹자는 휘트먼의 시작(詩作)의 시작(始作)을 그의 삶의 존재방식을 통해
다음과 같은 해석을 내리기도 한다.
[추위에 떠는 사람일수록 햇볕을 따뜻하게 느끼고,]
[인생의 고뇌를 겪은 사람일수록 생명의 존귀함을 안다.]
[휘트먼 자신의 고단한 삶을 통해 그는 거듭난 눈을 갖게 된 것이다.]

길섶에 흐드러지게 돋아난 풀잎은
그 생성과 소멸의 기한에 대해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여 때가 되면 피고 지기를 쉼없이 거듭하며
그 생명력을 유지한다.
피다 진 풀잎은 다른 풀잎에 자양분이 되고
다시 수명을 다해 말라 비틀어져 죽어가는 풀잎은
이듬해 피어날 풀잎에 영양분이 되어
삶과 죽음의 접점을 넘나드는 묘한 생명력을 스스로 배태하고 있다.
연약한 풀잎의 모습과 힘없는 인간의 모습을 병렬시켜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길 때 새로운 구원의 빛이 비춘다는
신비한 종교사상까지 내포하고 있는 휘트먼의 시...




Nature without check with original energy. - Song of Myself 1 -

Myself moving forward then and now and forever. - Song of Myself 32 -

Behavior lawless as snow-flakes, words simple as grass, uncomb'd head,
laughter, and naivete, slow-stepping feet, common modes and emanations,
They descend in new forms from the tips of his fingers. - Song of Myself 39 -

They are ultimate in their own right
---- they are calm, clear, well-possess'd themselves.
I am for you, and you are for me,
not only for our own sake, but for others' sakes.
- A Woman waits for Me -

This moment yearning and thoughtful sitting alone,
It seems to me there are other men in other lands yearning and thoughtful.
- This Moment yearning and thoughtful.


휘트먼(Walt Whitman,1819 ~ 92). 미국의 시인.

뉴욕주 롱아일랜드 출생. 아버지는 목수였는데,
T. 페인(1737∼1809)의 인권사상 등에 심취하였고,
어머니는 네덜란드 이민 출신으로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풍을 지녔다.
4세 때 브루클린으로 이주, 가정사정으로 초등학교를 중퇴하여 인쇄소
직공으로 있으면서 독학으로 교양을 쌓았다. 1835년 고향에 돌아가 초등
학교 교사, 신문 편집 등에 종사하였다. 그 후 뉴욕으로 옮겨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1846년에는 브루클린의 일간지 《이글 Eagle》의
편집자가 되었다. 1848년 ‘프리 소일(free soil) 운동’ 의 주간신문
《자유민 Freeman》을 창간하여 그 주필로 활약하였다.

1850년대에 들어서자, 그는 합승마차의 마부석 옆에 앉거나 나룻배에
타거나 하여 민중의 생태를 관찰하고, 또는 아버지의 목수일을 도우며 많은 시간을 독서와 사색으로 보냈다. 이 내부침잠(內部沈潛)의 시기를 거쳐서
그의 시인으로의 전신(轉身)이 이루어졌다.

1855년 시집 《풀잎 Leaves of Grass》을 자비출판하였는데, 이것은
종래의 전통적 시형(詩型)을 크게 벗어나 미국의 적나라한 모습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찬미한 것이었다. 그러나 제3판(1860)에 이르자, 새로 수록된 《카라마스》 등의 시군(詩群)을 통해서 사랑과 연대(連帶)라고 하는 일정한 주장이 표면화하기 시작하여, 이른바 ‘예언자 시인’으로의 변모를 드러냈다. 논문 《민주주의의 미래상 Democratic Vistas》(1871)에서도 미국사회의
물질주의적인 경향을 비판하고, ‘인격주의’ 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1862년 겨울, 남북전쟁에 종군 중이던 동생 조지가 부상당한 것이 계기가 되어, 1863년 이후는 관청에 근무하면서 워싱턴의 병원에서 부상병을 간호하기도 하였다. 어떻든 남북전쟁을 극복하고 통일을 지킬 수 있었다는 것은 그에게는 커다란 기쁨이었으며, 자신의 고통과 죽음을 견디는 젊은 병사들의 모습을 직접 목격한 경험은 그의 마음속에 미국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1865년, 남북전쟁을 소재로 하는 72페이지의 작은 시집
《북소리 Drum-Taps》를 출판하고, 이듬해 링컨 대통령에 대한 추도시
(追悼詩) 《앞뜰에 라일락이 피었을 때 When Lilacs Last in the Dooryard
Bloom’d》를 포함한 24페이지의 《속편(續編)》을 출판해서 곧 《풀잎》
(4판, 1867)에 재록(再錄)하였다.

1873년에 중풍의 발작이 있었으나 요양에 전념, 1879년에는 서부 여행,
1880년에는 캐나다 여행도 할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다. 1882년에는
산문집 《자선일기(自選日記) 기타》를 출판, 문명(文名)도 높아졌다.
1884년에는 《풀잎》의 인세(印稅)로 세운 뉴저지주 캠던의 미클가(街)
자택에는 내외의 방문자가 빈번히 드나들었다. 그러나 체력도 약해졌지만
그 자신은 점차 염세주의로 기울었으며, 1888년 재차 중풍이 발작한 후,
1892년 폐렴(肺炎)으로 세상을 떠났다.


출처 ; http://www.boseong51.net/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Xi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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