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도 가을 처음 영국 런던으로 출장을 갔을때, 짧은 기간동안 취재를 하며 없는 시간을 쪼개 틈틈히 런던에 수많은 박물관과 미술관, 뮤지컬 등을 보러 다녔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단 한가지를 꼽으라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갔을때 입니다.
아시다시피 웨스트 민스터 사원은 영국 성공회의 성당이지만 왕들의 무덤이기도 하고, 영국 황실이 왕위를 계승하는 대관식이나 왕가의 결혼식, 혹은 장례식까지 치루는 가장 중요한 장소입니다. 저 유명한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비의 결혼식과 다이애나의 장례식이 열린 곳도 바로 웨스트민스터 사원입니다. 런던 내에서 유료 입장을 받는 몇 안되는 관광명소이기도 하지만, 항상 해외관광객들로 붐비는 이유는 이곳을 가게 되면 비로소 영국 왕실의 역사를 알게 될 뿐 아니라, 100년간 세상을 다스렸던 이 나라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를 많이 느낍니다.
둘러보는 코스는 입구 부터 시작해서 거의 대부분이 왕들의 칭송과 업적을 설명한 것들이 많은데 왕들의 역사가 끝나면 비록 왕이 아닌 사람들로 영국 역사를 빛낸 사람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옵니다. 극작가 셰익스피어, 국부론의 경제학자 아담스미스, 만유인력의 물리학자 아이작뉴턴, 진화생물학의 창시자 찰스 다윈, 음악의 어머니 헨델, 나폴레옹 군대를 격파한 웰링턴장군 까지.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시인의 코너(Poet's corner)'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시인의 코너' /GOOGLE
여기서 말하는 시인은 반드시 우리가 시인(詩人)이라고 부르는 테니슨이나 엘리어트 같은 시인들 뿐 아니라 극작가 셰익스피어 소설가 키플링, 찰스 디킨스, 제인오스틴, 샤롯 브론테 그리고 영어 사전을 처음 만든 사무엘 존슨까지 모든 문인들이 포함됩니다.
하지만 이 영광스러운 전당에 이름이 오른 이들은 문인 뿐만이 아닙니다.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가장 완벽하게 재연했다는 명배우 로렌스 올리비에와 바로크 음악가 헨델 까지. 영국의 언어와 문화를 갈고 다듬어서 세상에 널리 알리도록 만든 사람들에게 바치는 경의로운 자리가, 바로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시인의 코너'입니다. 그들은 자기네 나라를 구한 군인이나 정치인 혹은 과학자나 다른 모든 분야의 위인들을 모두 뒤로 하고, 왕들 다음으로 경의를 표했던 사람들이 바로 글을 쓰고 언어 창작에 전념했던 작가 혹은 예술인들이었던 것입니다.
영어가 오늘날 지구촌 공용어가 된 것은 세계 최강인 현대 미국의 역사가 영국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언어를 그토록 아끼고 다듬는데 열과 성을 다했던 영국인들의 노력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로 런던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활비가 드는 도시임에도 전세계 젊은이들이 영어를 배우기 위해 찾고, 또 어디를 가든지 영어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을 볼수 있으며, 모든 학문은 영어로 규격화 되며, 원작이 어떤 언어든 영어로 출판된 책이 나와야만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영어 하나 때문에 영국이 부가적으로 얻게 되는 경제적 효과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조금 다른 예지만, 얼마전 저는 한 촉망받는 시나리오 작가가 지병과 가난으로 고통을 받다가 혼자 쓸쓸히 생을 마감한 사건을 두고 한동안 멍해 있었습니다. 왜 오늘날까지도 우리나라에서 창작을 위해 일생을 거는 사람들은, 보릿고개 시절의 먹고 살기 힘든 수십년 전과 하나도 달라진것 없이, 가난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걸까요?
그런 상상을 한번 해봅니다. 수억대 광고 모델, 예능 프로의 엠씨에게 돌아가는 연봉을 딱 십분의 일만 잘라 가난한 작가들에게 투자한다면 좋은 영화, 좋은 드라마가 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우리도 언젠가는, 아카데미 시상식처럼 평생 공로상을 시나리오 작가가 받는 날이 오길 바래봅니다.
그리고 문인, 작가, 예술가들이 정치인보다 대접 받고 풍족하진 않더라도 적어도 가난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환경은 하루 빨리 사라지길 기원해봅니다.
그 옛날 이태리 피렌체에서 수많은 천재 화가들이 르네상스 시대를 선도했던 때, 가장 중요한 원천은 바로 돈과 권력을 지닌 권세가들이 이들에게 무한 투자를 했기 때문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시인의 코너'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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