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보시
李一基 시인· 계간 『문학예술』 발행인
나는 때때로 시장바닥을 자주 찾아가는 버릇이 있다. 무슨
물건을 구입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 돌아가는 생활
을 읽으려 찾는 것도 아니다. 시장에 들르면 왠지 마음이 넉
넉해지고 그 어지러운 듯이 널려진 가게의 물건들이 이루고
있는 조화로움과 친밀감에 메료되곤 한다.
각기 다른 사람들, 각기 다른 가게와 상품들, 거기 다른 것
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시장은 다름 아닌 필여와 충족
이라는 시장원리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내가 자주 찾는 서울 충무로와 인접한 인현시장 골목 어귀에
는 일흔이 넘은 듯 보이는 할머니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길
바닥에 나와 앉아 몇 가지 푸성귀를 놓고 그 푸성귀를 다듬고
있었다. 가진 것이하고는 거북등 같이 거칠고 야윈 손뿐이었
는지 그 빈손으로 어디에서 뜯어왔는지 철이른 들나물을 앞에
놓고 말없이 부지런히 다듬고 있었다.
그 어린 나물들 같은 생활을 다듬고 엮어 가는 주름 패인 할
머니의 주름진 생애, 어쩌면 그 할머니는 자신의 주름진 생활
언어를 가족들과 이웃들과 함께 다듬고 엮어 보고 싶은 슬픈
소망을 지니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들을 지울 수
가 없었다.
말없이 그리고 한결같이 푸성귀를 다듬고 있는 할머니를 바
라볼 때마다 엉뚱한 생각을 하곤 한다. 인간의 삶이란 불탄
자리에 잠시 남는 재와 같은 것일까. 아니면 우리들의 인생과
생애라는 것도 어쩌먼 빈 들판을 지나가는 ‘바람소리’ 같은 것
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시장 어귀에서 푸성귀를 다듬고 있는
그 할머니의 모습과 겹쳐진다.
우리의 일생과 삶이며 그 속에 지니는 소유와 누림은 물론
성취와 완성이라는 것도 빈 들팜을 달리는 허무의 바람소리
보다 나은 영속성이 있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스쳐 사라지는 순간의 바람과는 달리 진솔한 삶의 펑
범한 가치관, 즉 작은 일에도 큰 환희를 얻고 큰 근심을 작은
위안으로 펄쳐버리는 지혜와 함께 치를 떨고 이를 가는 증오
와 저주도 부처님의 자비를 통해 씻어내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길이 아니겠는가.
특히 현대인은 무슨 탓에선지 이웃과의 대화에 무척이나 인
색하다는 지탄들이 없지 않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부처
님 오신 날‘을 맞아 대화에 목마른 이웃에게 따뜻한 말이나마
나누는 ‘말의 보시’를 모두가 실천해 봄도 부처님의 가르심을
펴나가는 일은 아닐까 싶다.
* ‘금용사보’ 2009년 봄호 ‘금용칼럼’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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