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는 정통 클래식이라고 할 수 있고, 우리 민요는 우리의 민속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우리 가곡은 어떨까.
예전에 미국에서 여러 음악회와 독창회를 할 때면 아름다운 우리 가곡들을 세계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에서 음악회 프로그램에 우리 가곡들을 꼭 포함시키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서양인이 다가와 “그 곡은 어느 나라 음악이냐”고 물었다. 한국 가곡인 줄 잘 알면서도 뭔가 따져 묻는 눈치여서, “한국의 시인이 작사했고, 한국의 작곡가가 작곡했으며, 한국에서 태어난 내가 불렀으니 당연히 한국음악 아니냐”고 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하지만 그 음악에서 기본적 선율과 곡의 구성 자체는 서양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우리 가곡은 ‘궁상각치우’로 이뤄진 전통 창가곡이 아니라 서양의 대위법과 화성학을 도입해 만든 곡들이다. 물론 우리 가곡은 그 선율미와 서정성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이것은 서양인들이 보기에 그저 ‘한국가곡(Korean Lyric Song)’은 될 수 있을지언정 ‘한국민속예술(Korean Folk Art)’이나 ‘한국전통음악(Korean Traditional Music)’은 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우리 전통가락 중에서 내가 부를 수 있고, 즐거움과 만족을 줄 수 있는 정겹고 흥겨운 우리 민요를 발굴해 무대에서 직접 노래하고 연구해왔다.
우리 민요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음악이다. 가장 한국적인 음악이 가장 세계적인 음악으로 도약할 수 있다. 대한민국을 제외하곤 그 어디에도 없는 음악, 부르면 누구나 우리처럼 흥겨워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우리 민요가 사실은 우리 가곡보다 더욱 범세계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민속음악 판소리의 대표적인 다섯 마당 중 하나인 ‘춘향가’에 나오는 ‘농부가’를 기량이 뛰어난 이탈리아인 테너가 부른다면 어떨까? 과연 그 구수함과 익살스러움을 그대로 표현해낼 수 있을까? 이탈리아 오페라를 훌륭히 소화할 수 있는 테너라면 그 어떤 한국의 전통가수 못지않은 절창을 들려줄 것이다. 어떤 면에 있어서는 판소리 그 이상의 명쾌함을 가지고 훌륭한 가창을 보여줄 것이다. 판소리는 우리나라가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지만, 파란 눈의 이탈리아인 테너가 부르는 ‘농부가’는 상상하기 힘들어서 그렇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나는 1978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테아트로 콜론(Teatro Colon)’에서 오페라 ‘라보엠’의 로돌포 역으로 데뷔했다. 30년 전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동양인을 찾아보기가 극히 힘들었다. 나와 함께 고용된 서양인 테너는 굉장한 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 사람 옆에서는 너무 기가 죽어 소리도 못 낼 정도였다. 그러나 극장 측은 최종적으로 나를 주역 가수로 발탁했다. ‘동양인 로돌포’를 처음 본 사람들은 매우 낯설어했다. 하지만 공연을 무사히 마쳤을 때 관객들은 처음보다 훨씬 더 열광적이었다. 비록 클래식 음악의 변방에서 온 동양인 테너지만 서양의 테너보다 더 훌륭하다는 평을 들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탈리아인 테너가 ‘농부가’를 왜 못 부르겠는가. 그 음악의 기원이 어느 곳이든, 어떠한 장르든 정말 제대로 노래하는 사람의 음악은 누구에게나 감동을 줄 수 있고 그만큼의 가치와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가치와 생명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다양한 장르에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음악가들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그들의 톤 프로덕션(tone production), 즉 그들이 ‘소리’를 어떻게 만들어내느냐다. 그들이 어떤 소리를 내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대중가수의 노래든 피아니스트의 피아노 소리든 훌륭한 음악가들의 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소리가 매우 깊은 호흡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성악이나 관악뿐 아니라 건반악기나 현악기 등에도 모두 호흡이 필요하다. 지휘자를 비롯하여 모든 악기 주자들은 악기를 연주하며 줄기차게 호흡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의 음악에 생명을 불어넣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다. 모든 음악은 호흡의 리듬과 함께 나오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호흡을 가지고 있다. 특히 건강하고 아름다운 생명력을 가진 음악은 단순한 호흡이 아닌 아주 깊은 호흡을 가지고 있다.
훌륭한 음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그들의 몸 깊숙한 곳에서부터 음악을 끌어올리고 있다. 사람이 건강할 때에는 본인도 모르게 깊은 곳에서 호흡하고 있다. 그러나 그 건강에 이상이 있을 때 호흡은 점점 위로 벅차오르게 되어 있다. 임종이 가까운 사람은 숨이 턱에 찬다. 깊은 호흡과 건강한 생명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깊은 생각, 깊은 맛, 깊은 감동…. 무언가 ‘깊다’는 표현은 깊은 호흡과 관련해 근본적 생명력을 지향하는 인간의 본능적 표현이다.
‘농부가’를 예로 들면 실제로 서양의 오페라와 비교해봐도 상당한 난이도의 합창과 독창을 보여주고 있다. 이 ‘농부가’에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우리만의 고유한 음악적 호흡이 있다. 흥겨움 속에서도 느긋함이 있고 그 느긋함 속에 해학이 녹아 있다. 이러한 음악적 특성은 서양의 오페라와 판이하게 다르면서도 오페라에 버금가는, 또는 그 이상의 깊은 호흡을 요구한다.
실제로 위 곡을 가지고 미주와 유럽 순회공연을 했을 때 서양인들 또한 크게 감명을 받고 많은 관심을 보였다. 우선 우리가 오페라 가수들이므로 그 창법과 목소리는 그들에게 친숙하나 음악은 그때까지 전혀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것이었으므로 어떤 면에서 음악적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는 말은 문화적 우열의식을 벗어나 개성과 특징이 뚜렷할수록 더욱 범세계적 가치가 있다는 의미다.
우리의 판소리는 가장 개성이 있고 두드러진 음악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서양인들에게 친숙한 오페라 창법으로 다가간 것이 그들에게 더욱 인상 깊었을 것이다. 우리 가락을 서양 창법으로 불러내는 것은 새로운 시도, 일종의 크로스오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크로스오버가 필요한 때가 바로 이런 경우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학자와 함께 생각하면서 동시에 대중과 말하는 것과도 같다. 이는 음악적 설득이나 계몽이 아니다. 고도로 전문화된 소극적 가치를 보다 대중적이고 적극적인 가치로 이끌어내는 흥미로운 작업이고 음악적 기쁨을 더욱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자 하는 내 개인적인 열망이기도 하며, 어쩌면 동서양의 화합을 위한 유쾌한 제안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때로는 100번의 토론보다 단 한 번의 음악적 공감이 청중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 이에 우리가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지 못한다는 법이 없으며 주인공으로 당당히 나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
[[박인수 / 백석대 음악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