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어젯밤, 문득 하늘을 보니 초승달에서 상현달로 통통하게 차오르고 있었다. 달은 언제 봐도 참 곱다. 달빛은 언제나 마음 한편을 아릿하게 하면서도 이내 그 시선을 부드럽고 평화롭게 만든다. 차오르는가 싶으면 이내 기우는 달을 보자면 정말 시간의 흐름이 빠르다는 걸 느낀다. 낮이 길어 여름밤의 어둠은 천천히 스며오고, 어슴푸레 움직이는 구름의 실루엣도 멋진데다가 선듯선듯 불어오는
바람이 조금씩 조금씩 한낮의 더위를 밀어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달 구경이 일품이라는 월악산(月岳山) 언저리의 크고 깊은 계곡을 찾아갔었던 때가 벌써 지난 그믐이다. 이즈음은 산수 좋은 곳에 달 구경을 다닐 만큼 여유 있는 때가 아닌데다, 바위산 사이로 불쑥 다가서는
가장 크고 밝은 달을 만날 수 있다는 그곳에 간 때가 하필 달이 없는 날이라니…. 내가 몸담고 있는 수목원의 연구 분야 중 미래 10년을 준비하는 토론 자리여서 방해되는 모든 것이
차단된 곳을 택한다며, 차량 접근도 쉽지 않고 휴대
전화도 터지지 않는 적막한 산자락을 골랐다. 큰비가 오고 난 끝이라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만이 우렁찬, 눈 앞의 하나로 이뤄진 커다란 바위에 앉아 상상으로나마 만나는 달빛도 생각보다 깊이있고 좋았다. 일이 아니라, 휴가를 이렇게 보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일이라도 이런 곳에서 할 수 있으니 행운인가!
그 바위 산, 틈틈이 만들어진 숲을 둘러보다 문득 눈에 띈 게 소나무였다. 암봉(巖峰)이 그대로 드러난 바위산, 조금의 흙이라도 머무를 수 있는 곳이면 섬처럼 띠처럼 어김없이 소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뿐이 아니었다. 바위 위를 이단, 삼단으로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계류의 옆으로 드러난 뿌리에 물을 적시며 자라고 있는
나무 중에 섞여 자라는 풍치 좋은 소나무들이 곳곳에 있었다. 소나무는 척박한 땅에 자라며
건조해도 잘 버티는 나무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풍부하게 쏟아지며 흐르는 물가에서 자라난 소나무들은 새삼 생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천천히 생각해보니 소나무가 살아가고자 하는 땅은 본래 척박한 곳이 아닌 것이다. 비옥한 토양에는 무엇이든 자랄 수 있지만 너무 환경이 어려운 그런 땅에는 다른 나무들은 살지 못하므로 비로소 소나무의 차지가
가능해진 것이다. 소나무를 생태학적으로는 양수(陽樹)라고 한다. 숲은 그대로 있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변한다. 이를 천이(遷移)라고 하는데, 햇볕이 있어야만 살아 갈 수 있는 양수 소나무 숲이, 그늘에서도 견디는 참나무 같은 음수(陰樹)가 커가게 돼 이내 햇볕을 가리게 되면 점차 도태(淘汰)되는 방향으로 바뀌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숲은 이제 소나무 숲에서 참나무 숲으로 서서히 변해가는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열악해 다른 활엽수들이 제대로 자랄 수 없는 땅에 떨어진 솔씨들은 햇빛을 가리는 다른 나무들에 치이지 않고 비로소 자신만의 터를 잡아 꿋꿋하게 살아간다. 내가 만난 소나무들이 바로 그런 나무들이다. 그러니 소나무의 독야청청(獨也靑靑) 홀로 푸르른 강직함보다 더 큰 미덕은 숲의
요소로 태생적인 불리함을 가지고도 자신만의 강인함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아니, 그래서 그 푸르름이 더 가치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도 마찬가지다 싶다. 제각기 타고난 역량과 환경은 모두 다 다르고 때론 여러 가지 불리함으로 출발을 한 듯싶지만, 바위틈에 자리잡아 아름다운 솔씨처럼, 우리 스스로에게 적절하고 그래서 아름다운 나만의 삶이 존재하리라 믿는다.
이 여름은 이 산야의 곳곳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소나무 숲 구경을 권하고 싶다. 경북 울진 소광리의
금강소나무 숲은 올곧고 푸르른 기상의 우리 소나무에 대한 자긍심을 절로 키워준다. 대관령의 금강소나무는 내력을 알고 보면 80년 전, 좋은 솔씨를 하나하나 뿌려 만든 숲이다. 소나무 숲도 긴 안목으로 잘 가꾸면 얼마나 아름다운 숲으로 만들 수 있는지, 성심(誠心)을 가진 노력이 얼마나 큰일을 해내는지를 잘 보여준다. 안면도의 소나무 숲은 소나무 핏줄에 곰솔(海松)의 혈통을 아주 약간 섞어 바닷바람에도 아름답고 곧게 잘 자라고 있으니 환경에 잘 적응해 거듭나는 지혜와 용기를 담고 있다. 가야산 해인사나 통도사를 가는 길목의, 또는 배경의 소나무들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성찰해 평화로움과 선(善)함을
지향하게 한다.
어디 이 소나무들뿐인가. 우리나라 소나무의 탄생 신화쯤 되는 무가(巫歌) ‘성주풀이’에 천상 천궁에서 죄를 짓고 내려와
안동 땅 제비원에 거처를 정한 성주에 명을 받은 제비가 전국의 산천 곳곳에 퍼뜨린 소나무들…. 이렇게 어렵게 자리잡고 살아남은 그 숱한 이 땅의 소나무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오며 만들어낸
자연과
문화와
역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어느새 기품 있는 소나무의 푸르름이 우리에게 스며들 것이다.
이렇게 소나무들과 여름을 보내고 나면 이내 선선한 바람이 불 것이다. 그 즈음 다시 월악산의 달 구경을 떠날 날을 기약해 본다.
[오피니언] 살며 생각하며 문화일보의 이유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