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강은교 시인

"왜 오늘 아침에는 느닷없이 혼천의가 생각나는 것일까
그것이 별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까
은근히 타인(他人)의 눈총을받아야 하는…"
왜 오늘 아침에는 느닷없이 혼천의(渾天儀)가 생각나는 것일까. 그것도 대나무로 만든 지구 모양의 구(球)에 살도 몇 개 부서진 채로, 누렇게 변색된 한지도 찢어진 채로 매달려 있던 퇴계 선생의 혼천의가 말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혼천설에 근거해 만든, 일종의 우주모형인 혼천의가 결국 별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도시의 하늘에서는 찾기 어려운 별, 별의 꿈을 꾸는 사람은 은근히 눈총을 받아야 하는 별.
안동의 한 박물관을 거쳐 도산 서원에 갔던 날은 언젠가 아주 뜨겁던 여름날 오후였다. 흐르는 땀을 헤치고 도산 서원에 들렀을 때 퇴계 선생이 주로 거처로 삼았다는 도산서당은 의외로 작았었다.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마루도 거기 몇 명이나 앉을 수 있었을까 싶게 좁았을 뿐 아니라, 반질반질하게 퇴색되어 있었고, 그 마루 옆에 자리한 퇴계 선생의 방은 작고 어두컴컴하기까지 한 것이 정말 볼품없었다. 서너평 남짓한 창도 없는 방에 시렁이 있었을 법한 구석이 한쪽 귀퉁이에 길게 구분되어 있을 뿐이었다. 마치 토굴 같았다. 여름날 오후의 팽팽한 햇살 아래서 그 방은 안이 잘 안 보일 지경이었다. 아니 이런 방에서 눈부신 별들이 가득한 우주를 배경으로 한 혼천의를 만들었다니, 나는 순간 의아했었다. 그러다가 '아, 그렇군,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별자리가 숨어있는 혼천의를 만들었구나', 하면서 무릎을 쳤었다. 항상 '시간이 좀 걸리는' 나의 답답한 깨달음에 한숨을 쉬면서 말이다.
말하자면 별이 보이지 않았던, 그렇게 컴컴하고 좁은 방이었기에 이황 선생은 우주를 보아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보아냄'은 아마도 퇴계 선생의 별을 향한 간절한 꿈 때문이었을 것이다. 별의 꿈을 좇던 사람, 별을 좇아 달려가던 사람―퇴계 선생은 그런 이였으리라.
안동 박물관에는 또 퇴계 선생의 앉은뱅이 책상과 의자도 잘 모셔져 있었던 생각이 난다. 책상은 역시 '저기서 어떻게 그런 대학문을 하셨을까' 싶은 앉은뱅이 책상이었지만 의자는 상당히 견고하고 아름다웠다. 섬세하게 무늬까지 새겨져 있었다. 돈을 좀 들이신 것 같았다. 그러나 등받이가 없었다…. 보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등불―'스탠드' 같은 것이었을 것이라고 오해했다. 왜 저런 비싼 의자를, 그것도 등받이도 없는 걸, 높이도 맞지 않는 걸 만들었을까, 생각던 끝에 나에겐 또 한발 늦은 깨달음이 왔었다. '아아~, 그렇구나, 등받이가 없으니 조금 잠이 들려고 하면 뒤로 자빠질 게 아닌가, 그때의 잠은 꿈 없는 잠이 분명하니, 저 의자는 잠들려는 자아를 깨우는, 경각의자(警覺椅子), 또는 잠듦을 경계하는 그런 경계의자(警戒椅子)로구나. 잠들지 않은 채 명징한 가슴으로 별을 보려는 이의 의자로구나.'
아무튼 그러고 보니, 나의 집―비록 허공에 매달려 있긴 하지만―은 너무 좋다. 나의 방에는 환한 전등이 달려있고 스탠드까지 한편에 있다. 그리고 전면이 유리창이다. 가끔 달이 지나다 나의 '하는 양'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책상에 앉아있는 모습을 찍은 톨스토이의 사진을 보고 그에 자극받아 최근에 산 책상도 아주 크고 멋있다. 책상 위에는 컴퓨터도 놓여 있다. 의자도 아주 좋은 것이다. 특히 내 의자는 박람회에서 상을 탄 그런 발명품이다. 나는 그 의자를 꿈에 차서 내 방으로 주문, 배달시켰었다. 나는 지금 거기 앉아서 아주 편안하게 잔다. 내 아픈 허리에 충분한 휴식을 주며, 꿈도 없이, 깊은 잠을. 그러나 별은 보이지 않는다. 전면이 유리창인 방임에도 불구하고. 공중에, 그러니까 나의 방은 아주 별에 가깝게 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긴 나도 이미 별을 보려 하지 않는다. 그건 소녀들이나 할 일이라고, 세상이 원하는 생각을 할 뿐이다. 아, 정말 그런 이가 보고 싶다. 별을 좇으며 별을 보아내는 이가.
하긴 요즘도 그런 이가 있기는 하다. 후광(後廣) 선생, 그이도 아마 그렇게 별의 꿈을 좇은 이가 아니었을까? 평생 별의 꿈을 좇아 달려나간 삶―그 삶의 땀이 최근에 하늘로 돌아가신 그이의 침대맡에는 맺혀 있지 않았을까? 아마도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고서라도 별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여성시인 쉼보르스카의 '하늘'이라는 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부서지기 쉽고, 유동적이며, 바위처럼 단단한,/ 휘발성으로 변했다가, 또 가볍게 날아오르기도 하는/ 하늘의 조각들, 하늘의 얼룩들./ 하늘의 파편과 그 부스러기들./ 하늘은 어디에나 현존한다./ 심지어 어둠의 살갗 아래도…'
아마도 지금 퇴계 선생 같은 이들의 하늘은 어디에나 현존하며 심지어 어둠의 살갗 아래에서도 별을 반짝이게 하고 계실 것이다. 그이들이 앉아 계신 하늘은 나의 별 없는 아파트에서 보이는 그저 막막하기만 한 허공이 아니라 한없이 넓고 부드러운 자궁 같은 곳이리라. 거기에는 온갖 눈부신 별들이 양수에 떠서 반짝이고 있을 것이다. 아, 거기선 별의 숨소리가 들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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