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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鄕 집 지키는 절구통

정로즈 2014. 9. 22. 14:09
  • 故鄕 집 지키는 절구통

어느 집에나 없어선 안될 守護神… 절굿공이와 맞닿아 곡식들 찧어
아직도 절구로 메주콩 찧는 엄마… 종갓집 시집살이에 벼 찧고 눈물
언니와 난 꽃잎 찧던 달콤한 추억 "엄마, 절구통 저에게 물려주세요"
장미숙 주부·수필가
장미숙 주부·수필가
마음이 팍팍한 날이나 고단함이 몰려오는 날이면 나는 특별한 사진을 바라본다. 그건 바로 고향 집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다. 사진 안에는 그리워하는 것들이 있고, 보이지 않는 이야기들도 담겨 있다. 언제 봐도 따뜻하고 정겨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되는 모습들이 나를 추억 속으로 이끈다.

그렇게 크지 않은 집에는 곳곳에 쌓인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하다. 푸른 이끼가 낀 돌담, 대나무 바지랑대, 장독대, 작은 바람에도 삐거덕거리는 양철 대문, 감나무…. 작은 텃밭에는 고추며 옥수수가 자라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사진 속에는 없지만 뒤꼍에도 많은 이야기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버지의 지게, 오줌싸개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키, 나무를 하던 갈퀴도 있고, 바람벽에는 마늘과 양파도 주렁주렁 걸려 있다.

그 많은 풍경 속에서 변함없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물건이 절구통과 절굿공이다. 고향 집을 지키는 수호신(守護神)처럼 든든하기가 그지없는 절구통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넉넉하게 해준다. 돌확 속 공간을 채우고 있는 건 달콤하고 애틋한 추억들이다.

예전보다 용도가 많이 줄어든 절구통이지만 그 위용은 아직도 변함없다. 균형 잡힌 동그랗고 풍성한 몸은 날씬한 절굿공이와 조화를 이룬다. 잘록한 허리와 부드러운 반달 모양의 양쪽 날개를 가진 절굿공이는 돌확과 빈틈없이 이가 맞는다. 돌확의 가운데 부분과 절굿공이의 동그란 부분이 맞닿는 곳에서 벼가 쌀이 됐고, 찹쌀이 인절미가 됐으며, 콩이 메주가 됐다. 때로는 재료 맛을 그대로 살린 열무김치를 탄생시켰다.

절구통은 요즘의 믹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자연의 맛을 재현한다. 정미소가 생기기 전 절구통은 어느 집에나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물건이었다. 예전에는 곡식을 절구통에 넣고 절굿공이로 찧었다. 먼 옛날부터 이렇게 곡식을 찧어 밥을 해 먹었기 때문에 기계로 문지르고 깎아서 도정하는 오늘날에도 '방아 찧는다'는 말이 남아 있다.

친정어머니는 종갓집에 시집와서 많은 식구 수발을 들어야 했는데, 아침저녁으로 절구에 보리쌀 찧는 게 일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힘든 시절이었다고 회상한다.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저녁나절이면 집마다 보리방아 찧는 소리가 온 마을을 들뜨게 했으리라.

보리쌀뿐만 아니라 떡을 하기 위한 쌀가루도 절구통에 넣고 찧어 가루를 냈다. 잔치를 준비할 때는 아낙네 여럿이 모여 한쪽에선 쌍절구질을 하고, 한쪽에선 가루를 체로 치는데 이처럼 어울려 일할 때는 절구질 동작을 성적 농담으로 버무려 힘든 일을 즐겁게 했다고 기록은 전한다. 그런 까닭에 '방아타령' '방아악' 같은 민요가 생겼을 것이다.

벼를 찧는 시대도, 떡방아를 찧는 시대도 아닌 세상이 되다 보니 절구통은 집을 지키거나 장식에 쓰는 물건으로 전락해버렸다. 다행히 엄마는 아직도 절구통을 쓰신다. 친정집 마당의 절구통도 일 년에 몇 번 절굿공이와 마음을 맞춘다. 메주콩을 찧을 때, 쑥떡을 할 때, 열무김치를 담글 때다. 시대가 변해도 절구로 찧어야만 맛이 난다는 친정엄마의 철학이 그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ESSAY] 故鄕 집 지키는 절구통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돌확 속을 들여다보면 종갓집 시집살이와 없는 살림에 눈물 마를 날 없었을 엄마의 삶이 절절히 녹아있는 것 같다. 혹독한 시집살이를 하던 시절 벼를 찧으며 흘렸던 눈물과, 아버지 병으로 인한 한숨과, 자식들을 혼자 키워야 했던 설움이 배어든 절구통이 엄마의 세월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달콤하고 행복했던 추억도 물론 많다. 명절이 돌아오면 떡을 찧던 절구통 옆에서 우리는 떨어질 줄 몰랐다. 절구는 놀잇감으로도 좋았다. 비 오는 날 종이배를 만들어 개미를 태우고는 물 위에 둥둥 띄워 놓았다. 가을밤이면 돌확 속에 풍덩 빠진 달 속에서 멋진 왕자님을 만났다. 봉숭아 물을 들이려고 언니와 함께 꽃잎을 찧다가 절굿공이로 손을 찧어 혼이 난 적도 있다.

그렇게 절구통은 우리와 함께 나이를 먹었다. 우리 모습은 세월 따라 변해갔지만 절구통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 절구통이 요즘엔 많이 쓸쓸해 보인다. 함께 놀아줄 아이들을 잃으면서 품고 있던 동화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젠 늙으신 엄마의 힘없는 절굿공이 소리나 엄마의 발걸음 소리라도 오래도록 들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나나 절구통이나 다를 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태어나 처음 본 순간부터 여태껏 말없이 우리를 지켜주고 함께해 준 든든한 절구통이 있어 고향 집은 따뜻하다. 작은 돌확 속에서는 아무리 꺼내도 마르지 않는 추억이 있다. 만약 그 자리에 절구통이 없다면 우리는 뭔가를 잃어버린 것처럼 허전한 마음을 달랠 수 없을 것이다.

몇 년 전 고향에 갔을 때 엄마는 절구통에 빨간 고추를 찧고 있었다. 그 모습을 툇마루에서 지켜보다 나도 모르게 뭔가 울컥 가슴을 치고 올라왔다. 엄마에게 소리쳤다. "엄마, 절구통은 절대 버리면 안 돼. 나중에 내가 나이 들면 여기 와서 살 거니까 절구통도 물려주세요." 그러자 엄마는 "나 죽으면 별 쓸모도 없을 것인디, 이건 뭐할라고…" 하며 절구통을 쓰다듬었다.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하나가 내 가슴속으로 가득 밀려들어 왔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