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월남·참전… 50년 간 그렸다, 자유 갈망하는 인간

정로즈 2018. 9. 5. 10:43

87세에 개인전 여는 황용엽 화가
'이중섭미술상' 초대 수상작가

길게 늘어뜨린 몸은 구부정하지만 커다란 눈에서 나오는 안광이 형형하다. 황용엽(87)은 자신이 그린 '인간'과 닮았다. 그림 속 사람처럼 길진 않지만, 마른 몸매와 구부정한 자세는 그대로다. 다른 점이 있다면, 황 작가는 자주 웃었다. 그는 "세상에 던져진 나의 절실한 모습을 그린 자화상"이라고 했다.

서울 사당동 작업실에서 만난 황용엽 작가.
서울 사당동 작업실에서 만난 황용엽 작가. /장련성 객원기자

이중섭미술상 1회 수상자인 황용엽 개인전 '같은 선상에서'가 7~16일 서울 태평로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열린다. 1989년 이중섭미술상 심사위원들은 그가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은둔 자세로 자기 영역을 고수"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황 작가는 1973년부터 지금까지 50년 가까이 '인간'이란 주제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엔 1970년대 작부터 최신작까지 40여 점을 선보인다.
1931년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미술학교를 다녔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인민군 징집을 피해다니다 남쪽으로 내려왔지만 어머니와 형제 일부는 미처 피란하지 못했다. 국군에 입대해 전쟁 중 다리에 총을 맞고 제대했다. 전쟁 같은 삶은 계속됐다. 홍익대 미대에 편입한 그는 돈벌이를 위해 미군부대에 가서 초상화를 그리다 영창에도 갔다. "그렇게 많은 죽음과 고통을 보면서 인간의 가치가 어떻게 존중받아야 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어요. 배운 게 아니라 인생과 역사에서 체득한 거죠. 제가 아름다운 풍경이나 인체 같은 걸 어떻게 그리겠어요?"

2018년 작‘어느 날’.
2018년 작‘어느 날’. 1970년대‘인간’연작처럼 파란색을 썼지만, 한결 밝아졌다. 날카롭고 차가운 직선도 섬세하고 부드러워졌다. /아트조선
황 작가는 자신의 삶과 경험에서부터 그림을 시작했다. 초상화를 많이 그려 사람 그리는 건 자신 있었다. 1970년대부터 그린 유화 '인간' 연작은 차갑고 어두웠다. 회색과 파란색을 많이 사용했고, 형상은 극히 단순했다. 쇠창살이나 철조망 속에 서 있는 인간은 무기력하고, 외로웠다. 자유가 절실해 보였다. 1980년대에도 인간을 그렸지만, 색채는 다양해졌다. 단청이나 상감청자, 고분벽화 등 토속적 요소를 그림에 녹여냈다. 1990년대 이후엔 유년기를 보낸 평남 강서군 풍경이나 무속 신앙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고, '내 이야기' '어느 날' '삶 이야기'란 제목을 붙였다. 여전히 인간 그리기를 멈추지 않지만, 표정이 더 이상 어둡지만은 않다. 가족과 친구가 생기고, 생활에서 안정을 찾아가며 과거의 상흔을 치유하는 그의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매일 화실에 나와 7~8시간씩 그림을 그린다. 일주일에 두 번씩 테니스를 친다. 그는 "운동을 워낙 좋아해 건강한 것 같다"며 "1970년대부터 스키 마니아인데, 이젠 가족들이 못 타게 한다"고 했다. 일부 그림에서 보이는 곡선은 스키 슬로프에 새겨진 스키의 흔적에서 영감 받은 것이다. 1970년대에 그렸던 그림을 수정하는 작업도 한다. "이중섭미술상을 받았던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별로 없어요. 상감청자, 고분벽화 등 그때그때 영감 받은 것을 반영하긴 했지만 근본은 같죠. 이 시대를 사는 인간을 그립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03/2018090300006.html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03/20180903000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