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우정아의 아트스토리 255 천천히 밝아오는 새해의 태양

정로즈 2019. 1. 1. 12:50
액자에 끼운 유화 같은 이 그림은 실은 거대한 천장화다. 교황 바울 5세의 조카이자 비서로서 당대 최고의 권력을 누렸던 추기경 스키피오네 보르게제가 저택의 별채를 장식하기 위해 화가 기도 레니(Guido Reni·1575~1642)에게 주문했다. 강렬하고 격정적인 바로크 양식보다 우아하고 정돈된 르네상스를 추구했던 레니는 추기경이 소장하고 있던 고대 로마의 석관과 개선문 등의 고대 조각을 참조하여 걸작을 만들어냈다.

기도 레니, 오로라, 1614년, 약 7×2.8m, 프레스코화, 로마, 팔라초 팔라 비치니-로스필리오시의 카지노 델 오로라 소재.
기도 레니, 오로라, 1614년, 약 7×2.8m, 프레스코화, 로마, 팔라초 팔라 비치니-로스필리오시의 카지노 델 오로라 소재.

하늘을 올려다보듯 고개를 들면 사두마차를 탄 태양의 신(神) 아폴론이 지평선을 따라 달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그에 앞서 짙푸른 어둠이 내려앉은 풍경 위에 떠올라 검은 구름을 가르며 날아오르는 건 새벽의 여신 오로라다. 오로라 뒤로는 날개를 단 통통한 사내아이가 황금빛 횃불을 밝혀 들고 태양신의 마차를 인도한다. 새벽별, 포스포루스다. 손에 손을 잡고 춤을 추듯 마차를 에워싸고 앞으로 나아가는 여인들은 '시간(時間)'이다. 이처럼 새로운 태양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새벽의 여신이 밤을 몰아내고, 가녀린 새벽별이 빛을 밝힐 때까지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려야 한다.

레니의 그림 속에서 시간은 유난히 천천히 흐른다. 미풍에 옷자락을 날리며 마차와 함께 걸어나가는 여인들은 전후좌우를 살펴가며 구름이 꺼질세라 한 걸음 한 걸음을 살포시 내딛는다. 아폴론 역시 뛰어오르는 말들을 재촉하기보다는 오히려 서두르지 않게 달래듯이 고삐를 느슨하게 쥐었다. 그렇게 나타나는 태양은 눈이 부시도록 타오르는 게 아니라 은근하게 밝아 온다. 숨 가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다가오는 새해는 이렇게 차분하고 여유 있게 왔으면 좋겠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31/20181231025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