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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가 율곡에게 준 당부

정로즈 2019. 1. 14. 10:02
입력 2019.01.14 03:14

묵향(墨香)을 맡으면 왠지 기분이 좋고 호흡이 아랫배로 깊게 내려가는 걸 느낀다. 먹물이 배어 있는 유가의 고택을 방문할 때도 그렇다. 편액이나 사랑채 벽에 걸려 있는 문구 내용들도 유심히 살펴본다. 그 내용들을 보게 되면 집주인의 취향이나 삶에 대한 문제의식을 짐작할 수 있다.

안동 시내에 가끔 방문하는 치암고택(恥巖古宅)이 있다. 이 집 대청마루 벽에 칠언문구가 하나 쓰여 있다. '入朝當戒喜事(입조당계희사) 持心貴在不欺(지심귀재불기)'라는 글귀였다. 집주인에게 이 문구의 유래를 물으니 퇴계 선생이 젊은 율곡에게 당부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당대의 천재로 이름난 율곡이 23세 때 안동 도산의 퇴계 선생을 방문했다. 당시 퇴계는 58세였다. 패기의 젊은 천재와 홍시(紅枾)처럼 푹 익은 인품을 지녔던 대학자의 만남이었다.

퇴계는 많은 제자를 보아왔던 터라 젊은 사람들을 보면 지인지감(知人之鑑)이 있었던 모양이다. 23일을 머물고 떠나가는 율곡이 퇴계에게 가르침을 청했을 때 이 문구를 주었다. '조정에 들어가서는 희사(喜事)를 경계하고, 마음 닦는 공부를 할 때에는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게 귀한 일이다'라는 뜻이었다. 전자는 벼슬길의 주의점이고 후자는 내면 수양의 요점이었다. 여기에서 희사(喜事)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보통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율곡이 머리가 좋으니까 아이디어가 샘솟을 것이고, 아이디어가 많다 보면 틀림없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자'는 제안을 조정에서 많이 할 것으로 퇴계는 본 것이다. 너무 제안을 많이 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러나 필자 는 조금 달리 보고 싶다. '희사''달콤한 이야기'로 해석하고 싶다. '기쁜 일'이라는 것은 결국 임금이 듣기 좋은 일, 또는 듣기 좋은 이야기 아니겠는가. 대통령이 참석하는 청와대 회의에서 듣기 좋은 이야기만 하지 말라는 당부로 여겨진다. 임금이 듣기 좋은 달콤한 이야기만 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고택에 써진 '입조당계희사'를 보고 느낀 소감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13/201901130211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