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절필(絶筆) - 이근배

정로즈 2019. 1. 16. 12:39
절필(絶筆)             
―이근배 (1940∼)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절필(絶筆)



아직 밖은 매운 바람일 때  
하늘의 창을 열고
흰 불꽃을 터뜨리는  
목련의 한 획
또는  
봄밤을 밝혀 지새우고는
그 쏟아낸 혈흔(血痕)들을 지워가는  
벚꽃의 산화(散華)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드는  
단풍으로 알몸을 태우는
설악(雪嶽)의 물소리  
오오 꺾어봤으면
그것들처럼 한 번  
짐승스럽게 꺾어봤으면
이 무딘 사랑의  
붓대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절필(絶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