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감옥 같던 사춘기 시절… 자유의 날개 달아준 마법의 그림

정로즈 2019. 1. 20. 09:48

황주리가 본 '샤갈'展

황주리 화가
황주리 화가

어릴 적 화집 속에서 처음 본 샤갈의 그림은 내 영혼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깊고 짙은 푸른 색깔을 배경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연인의 이미지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어쩌면 샤갈의 그림은 이 고달픈 세상을 꿈꾸듯 왜곡시켜, 내 사춘기 시절 감금된 수업시간을 자유로운 하늘로 만들어버린 마법의 그림이었다. 나의 중고등학교 미술 시간은 샤갈 그림을 흉내내는, 드물게 행복한 시간들로 이어졌다. 염소도, 서커스 하는 남자도, 새보다 높게 나는 사람들도, 그래서 새가 되어버린 사람들도, 따라 그릴수록 샤갈의 그림은 "더 높이 날아도 돼" 하는 것만 같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맨 처음 유럽 연수를 갔을 때, 프랑스 니스의 샤갈미술관을 찾았던 게 엊그제 같다. 주로 종교적인 그림들과 온 눈에 햇살이 스며들듯 환해지던 스테인드글라스 그림들을 본 기억이 아련하다.

지금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샤갈의 '러브 앤 라이프'전(展)은 아내 벨라 로젠벨트가 생전에 어린 시절 고향에 관한 에피소드들을 때 묻지 않은 시선으로 써내려간 글들에 한 장 한 장 온 사랑을 다해 그려 넣은 샤갈의 드로잉들을 만날 수 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지나간 삶의 소소한 행복들에 관해 관람자는 벨라의 글과 샤갈의 그림을 같이 보면서 천천히 음미할 일이다.

마르크 샤갈의 ‘생일’(1915). 멀티미디어 형식으로 선보이는 작품이다.
마르크 샤갈의 ‘생일’(1915). 멀티미디어 형식으로 선보이는 작품이다. /국립이스라엘미술관

샤갈은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산책, 생일, 한여름 밤의 꿈, 에펠탑의 신랑 신부 같은 그림 제목을 붙였다. 그에게 있어 잊을 수 없는 유년의 고향 비테프스크의 풍경들, "나는 벨라에게 예스(Yes)인지 노(No)인지를 묻지 않고는 결코 작품을 끝내거나 서명하지 않는다"고 쓸 만큼 사랑했지만 일찍 세상을 떠난 벨라, 핍박받는 유대인으로 1·2차 세계대전을 살아낸 샤갈은 비극의 시대를 독창적인 휴머니즘으로 승화시켰다. 깊고 눈부신 색채와 슬픔과 기쁨과 사랑과 향수를 담은 그림 속 인물들이 땅에 발 붙이지 못하고 떠다니는 이유를 나는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중력의 법칙을 거스른 채 하늘로 함께 떠오르는 연인은 "예술과 삶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색깔은 오직 하나. 그것은 사랑의 색이다"라고 말한 샤갈의 상징적 이 미지이다. 발 아래 땅이 없이 공중에서 떠도는 사람들, 조국을 잃고 방랑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이미지에 요즘의 범지구적 코드인 난민 이미지가 겹친다. 그 부유하는 삶에 안정과 평화를 선물했던 벨라, 그녀가 떠난 시간들은 슬픔과 절망을 극복하는 사랑의 연금술로 영원히 남았다. 백 년을 살다간 샤갈의 삶과 사랑에 끝없는 존경을 보낸다. (02)332-8011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30/201808300015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