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진숙의 휴먼 갤러리](28)서구 시각서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선택적 거울’로 왜곡

정로즈 2019. 1. 3. 13:56

앵그르의 ‘오송빌 백작부인의 초상화’

‘오송빌 백작부인의 초상화’(1845) 속 거울을 다시 보자. 거울은 백작부인만 비추고 있다. 당연히 비쳐야 할 방 안의 맞은편 사물들은 전혀 비치지 않는다. 백작부인의 모습도 살짝 왜곡되어 있다. 실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렸기 때문이다.

‘오송빌 백작부인의 초상화’(1845) 속 거울을 다시 보자. 거울은 백작부인만 비추고 있다. 당연히 비쳐야 할 방 안의 맞은편 사물들은 전혀 비치지 않는다. 백작부인의 모습도 살짝 왜곡되어 있다. 실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렸기 때문이다.

■ 푸른 드레스를 입은 백작부인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이것은 예술이 던지는 궁극의 질문이다. 궁극의 아름다움에 도달하기 위한 예술가들이 행한 무수한 노력의 흔적이 예술사다.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1780~1867)의 ‘오송빌 백작부인의 초상화’는 이런 질문에 대한 화가의 응답이다. 그림 속 여인은 프랑스 낭만주의 문인인 스탈 부인의 외손녀이며, 본인도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의 전기를 썼던 전기 작가로 유명한 여인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앵그르가 그린 초상화의 주인공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사실 초상화 자체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녀의 업적에는 관심이 덜 갈 정도다. 이 그림은 우리를 두 번 놀라게 한다. 우선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아름다움 때문에 한 번, 뜻하지 않은 반전 때문에 또 한 번.

이 그림은 한 여인의 초상화를 넘어 신고전주의 예술의 본령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여인의 자세, 비례, 구도, 색채 사용 등 모든 것이 안정적이고 완벽하다. 빨강, 노랑, 파랑의 순수한 삼원색을 고상하게 사용하는 신고전주의 색채 원칙을 지키고 있다. 가장 지배적인 색인 푸른색은 벨벳, 도자기, 여인의 공단 드레스 등 사물의 질감과 결부되어 그 뉘앙스가 달라지며 풍부한 색감을 보여준다.

백작부인이 입고 있는 푸른색 드레스는 당시 유행과는 거리가 먼 옷으로 화가의 의도적인 선택이다. 푸른색은 중세 때부터 귀한 색으로 여겨졌다. 찬연한 푸른색은 영원한 것에 대한 동경의 표현이며, 푸른 옷을 입은 여인은 영원한 이상적인 여인이다. 앵그르의 푸른색은 순수한 푸른색이다. 그녀의 공단 드레스의 환한 부분은 좀 더 밝은 푸른색이고, 어두운 부분은 좀 더 어두운 푸른색일 뿐 주변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런 방식으로 색을 사용하는 것은 당시 보색관계와 색 간섭에 대해 연구하던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의 색채 혁명에 대해 노골적인 반대를 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림 속에 빨강, 파랑, 노랑의 원색의 조합은 참으로 정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거울 테두리의 황금색, 의자 위에 노란색 천이 배치되어 균형을 잡고 있다. 백작부인이 하늘색 드레스에 어울리지 않는 빨간색 리본을 단 이유도 부족한 빨간색을 보충하려는 시도다. 꽃도 빨간색과 노란색만 있다. 빨간색과 노란색 사물은 많지 않지만, 거울에 비치기 때문에 색이 차지하는 면적은 두 배가 된다. 거울은 일종의 색채 증폭기 역할을 하고 있다. 

낭만주의 문인 외손녀가 주인공 
아름다움 못지않게 반전에 놀라
턱 괴고 있는 손, 몸 각도서 불가능 
거울도 반대편은 텅 빈 공허 남겨

그런데 그 거울은 대반전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아름다움은 불편함으로 변한다. 거울은 백작부인만 비추고 있다. 당연히 비쳐야 할 방 안의 맞은편 사물들은 전혀 비치지 않는 텅 빈 공허가 입을 벌리고 있다. 백작부인의 모습도 살짝 왜곡되어 있다. 거울에는 턱을 괴고 있는 부인의 손이 그려져 있는데, 지금 취하고 있는 몸의 각도에서는 손이 보일 수 없다.

왜 이렇게 그려졌을까? 실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렸기 때문이다. 거울이 처음 그려졌던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의 결혼’에서 거울은 관람객이 보지 못하는 반대편 상황을 보여주는 장치였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등장하는 거울은 장면을 지배하는 시선을, 페르메이르의 ‘음악 수업’에서는 등장인물의 속마음 등을 보여주었다. 뜻하지 않은 진실을 보여주던 거울은 신고전주의자 앵그르의 작품에서는 희한한 요술거울이 되었다. 그것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매우 선택적인 거울이다. 이것은 신고전주의 미학과 상당히 통한다. 

■ 격변하는 시대를 대하는 두 태도 

인간사회는 언제나 혼란스럽다. 그렇지 않은 적이 없다. 가는 세월을 막을 수 없듯이 오는 세월도 막지 못한다. 새로운 시대와 함께 등장하는 새로움은 언제나 거칠고 예의 없어 보인다. ‘젊은 세대들이 버르장머리 없다’는 말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있어 왔던 오래된 푸념이다. 앵그르가 제자들에게 남긴 말들을 기록한 책인 <앵그르의 예술 한담>(이세진 옮김·북노마드·2014)을 보면 그는 세상의 혼란에 대해 자주 분개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프랑스혁명의 발발과 함께 젊은 시절을 보냈고, 영웅 나폴레옹의 등장과 몰락, 복고된 왕정의 무능과 부패, 보나파르티슴의 재등장을 지켜봐야 했다. 권력은 무상했고, 산업혁명으로 돈의 힘이 노골화되는 과정은 잔인했다. 그는 “시대를 따라가야 한다고? 하지만 그 시대가 틀렸다면?”이라고 거칠게 반문하며 시대의 영향을 거부했다. 그는 세상이 혼란할수록 거꾸로, 예술은 순수한 아름다움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신고전주의 미학에 집착한 이유다. 그러나 다른 젊은 예술가들은 시대를 따라가며 진실의 아름다움을 추구했고, 그리기 방식을 바꾸어 나갔다. 그 젊은이들의 이름은 제리코와 들라크루아였고, 후에 낭만주의자들이라 불렸다. 

예술가가 시대의 영향을 받는 것을 말로는 부정했지만 앵그르는 위대한 예술가답게 누구보다도 시대의 흐름을 잘 알고 있었다. 1798년 나폴레옹은 이집트, 시리아 등지를 정벌하는 동방원정길에 올랐다. 이때 동행했던 167명의 학자와 예술가들에 의해 다양한 보고서가 제출되면서 중서부 유럽 사람들의 관심사는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쪽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19세기 초반 이후 서구미술에 난데없는 동양풍의 여자들이 등장하는 역사적 배경이다. 

앵그르는 터키에 가지도 않고 ‘터키탕’(1862)을 그렸다. 터키 대사 부인이었던 메리 워틀리 몬태규가 쓴 <터키 대사관의 편지>(1763)라는 책에 상상력을 덧붙였다. ‘터키탕’에는 서구의 입장에서 동양을 제멋대로 바라보는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이 들어가 있다.

앵그르는 터키에 가지도 않고 ‘터키탕’(1862)을 그렸다. 터키 대사 부인이었던 메리 워틀리 몬태규가 쓴 <터키 대사관의 편지>(1763)라는 책에 상상력을 덧붙였다. ‘터키탕’에는 서구의 입장에서 동양을 제멋대로 바라보는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이 들어가 있다.

누구보다 앞서서 앵그르는 터키 술탄의 후궁이라는 이국적인 주제를 끌어들여 ‘큰 오달리스크’(1814)를 그리면서 이러한 흐름을 선도했다. 1848년 집권한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삼촌을 모방하면서 적극적으로 제국주의적 정책을 펼쳤고, 이에 따라 동방에 대한 관심은 더욱 증폭되었다. 앵그르의 대표작인 ‘터키탕’ 역시 이런 분위기에서 그려졌다. 앵그르는 심지어 터키에 가지도 않고, ‘터키탕’을 그렸다. 터키에 간다 한들 서양 남자가 터키 술탄의 후궁들의 목욕탕에 갈 수도 없었을 것이다. 단지 터키 대사 부인으로 터키에 머물며 실제로 터키탕을 방문했던 유일한 서양 사람인 메리 워틀리 몬태규가 쓴 <터키 대사관의 편지>(1763)라는 책을 참조했고, 거기에 자기의 상상력을 덧붙여서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에 더해진 또 하나의 상상력의 원천은 1814년에 발견된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 유적이다. 인도네시아 식민지령을 두고 네덜란드와 영국이 전쟁하던 중에 수풀에 덮인 거대한 불교 유적지가 발견되어 서구사회에 알려졌다. ‘터키탕’의 왼쪽 깊숙한 곳에 서서 춤추는 여인과 한쪽 다리를 세우고 앉아 있는 여인들은 이 유적에 새겨진 춤추는 신들의 모습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이슬람 국가인 터키의 문화와 인도네시아의 불교 유적이 한꺼번에 섞일 수 있는 것은 서양 사람들 입장에서는 둘 다 아시아의 문명이라는 이국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이것은 서구의 입장에서 동양을 제멋대로 바라보는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이다. 

터키 안 가고도 작품 ‘터키탕’ 그려 
동양을 멋대로 본 ‘오리엔탈리즘’
열쇠구멍 훔쳐 보듯이 ‘원형’ 그림 
남성 위주 시각적 제국주의 표현

물론 서양적인 요소도 있다. 앞 오른쪽에 있는 머리에 손을 얹고 비스듬히 누운 여인의 자세는 아리아드네의 잠든 모습이다. 자고 있는 모습만으로도 디오니소스가 반했기에 서양미술사 최고의 유혹녀의 자세로 여겨진다. 그 옆에 작은 악기를 든 뒷모습의 여인은 앵그르가 젊은 시절에 그렸던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자’(1808)를 그대로 따온 것이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동서양 여성 누드의 총집결판인 셈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림의 형태가 원형이라는 점이다. 이런 원형 그림을 키홀 페인팅(keyhole painting), 즉 열쇠구멍 그림이라는 별도의 명칭으로 부르는데 이는 말 그대로 열쇠구멍으로 훔쳐본 장면을 의미한다. 이로써 앵그르는 지금까지 여성의 누드화가 그려진 이유를 솔직하게 드러낸 셈이다. 그냥 보는 것보다 열쇠구멍으로 훔쳐보는 것이 은밀한 쾌감이 높다는 뜻이다. 그 이후 누드화란 여성을 관음증적 대상으로 보는, 남성 위주의 시각으로 그린 그림이었음을 모든 남녀 미술사학자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앵그르의 시대는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는 비너스를 그리기에는 좀 낯간지러웠다. 비너스가 누워 있던 그 자리에 마음 놓고 봐도 되는 새로운 약자가 등장했다. 동양 여자였다. 그리고 이 동양 여자들이 벗겨진 상태를 아주 죄책감 없이 보는 것은 바로 남성 위주의 시각적 제국주의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 앵그르의 매우 선택적인 거울 

자기 시대의 시선을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앵그르는 자신이 시대에 오염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혹자는 스승 다비드의 정치적 활동에 회의를 느꼈던 앵그르가 정치와 거리를 가진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정치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를 비정치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는 1806년 나폴레옹의 전성기 때 군주를 넘어서 세계를 구원하는 예수이자 제우스로 나폴레옹을 그렸다. 덕분에 그는 로마로 유학을 떠날 수 있었다. 20여년쯤 뒤 왕정이 복고되자 이번에는 부르봉 왕가를 찬양하는 그림을 그려 루이 18세의 궁정화가가 된다. 정치적이지 않은 척했지만 그는 자기 인생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정치적 구도를 적절히 이용했다. 

앵그르는 이렇듯 시대의 흐름을 능수능란하게 타고 있었지만, 기존의 정립된 신고전주의 예술 원칙만을 주장했다. 그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미의 왕국을 건설하고 싶어 했다. 앵그르는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은 새로움이 끼어들지 않아도 상관없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으로 족하다. 그러나 인간은 변화를 좋아하고 예술에서의 변화는 대개 퇴폐의 원인이다”라며 변화하는 시대의 새로움을 완강히 거부했다. ‘오송빌 백작부인의 초상화’에 그려진 앵그르의 매우 선택적인 거울은 이런 태도에서 비롯된다. 이 거울은 객관적으로 보이는 모든 것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거울이다.

정치 격변서 심리적 강요하던 시절 
그는 신고전주의 미학 집착 탓에
“혼란 속 예술 순수 지켜야” 생각 
현실 존재 않는 ‘미의 왕국’ 꿈꿔

정치적 격변 속에서 왕당파에서 혁명파로, 또 혁명파에서 왕당파로 권력이 급격하게 이동하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던 시절이었다. ‘눈 가리고 3년, 귀 막고 3년, 입 막고 3년’은 시집살이가 가혹하던 시절 며느리의 생존술이었다. 그런데 어찌 시집살이뿐이겠는가? 억압적 사회에서는 누구에게나 이런 것들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심리적으로 강요당한다. 이렇게 길들여졌던 사람은 후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는 사람이 된다. 왜냐하면 극심한 억압과 불안은 인간의 보편적 공감 기능을 퇴화시키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감각이 퇴화한 곳을 차지하는 것은 경직된 원칙이다. 하나의 예술 원칙이 경직된 도그마가 될 때는 진실을 왜곡하고, 위선적이고, 편향적인 아름다움만을 보여주게 된다. 신고전주의는 학제적으로 수용되어 판에 박힌 그림들을 양산해내는 아카데미즘의 중요한 뿌리 중 하나가 되었다. 

맨 처음에 던졌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소위 ‘순수한’ 예술도, ‘순수한’ 역사도, ‘순수한’ 심리학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다. 인간을 규정하는 데도 트렌드가 있어서 어떤 시대에는 도덕이, 어떤 시대에는 역사가, 어떤 시대에는 철학이, 어떤 시대에는 심리학 등등이 주요 키워드로 등장한다. 그러나 인간이란 여러 겹의 규정을 받는 복합적인 존재이며, 기존의 모든 학문을 다 동원해서 설명해도 여전히 충분히 해석되지 않는 존재다. 

‘이진숙의 휴먼갤러리’는 미술사에 담긴 인간을 다양한 측면에서 이해해보려는 시도였다. 앵그르를 소개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연재는 끝난다. 연재는 끝나지만 내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연재를 사랑해주신 독자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새해에는 좋은 일만 있으시라는 뻔한 덕담은 하지 않겠다. 새해에는 또 새해의 태양과 함께 새해의 문제들이 떠오를 것이다. 새로운 것이 등장했다면,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나타날 이유가 있어서 나타나는 것이니 말이다. 미술사가 이야기하는 유일한 진리는 새로운 것은 늘 과거와의 다툼 속에서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삶은 과거의 자기 복제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늘 시끄럽고 혼란스러워 보인다. 다만 어떤 문제가 주어졌을 때, 분노도 절망도 하지 않고 담담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담대함과 지혜가 우리에게 주어지길 빌어본다. 

■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이진숙의 휴먼 갤러리](28)서구 시각서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선택적 거울’로 왜곡

프릭 미술관 : 미국 뉴욕에 위치한 미술관으로, 본래는 실업가 헨리 클레이 프릭의 저택이었으나 그의 사망 이후인 1935년 그가 소장한 예술품들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본문에서 언급한 앵그르의 ‘오송빌 백작부인의 초상화’가 이곳에 소장되어 있다. 

■ 필자 이진숙 

[이진숙의 휴먼 갤러리](28)서구 시각서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선택적 거울’로 왜곡
 
서울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러시아 여행을 하며 트레차코프 미술관에서 만난 작품들에 큰 감명을 받아 미술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모스크바의 러시아 국립인문대학 미술사학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롤리타는 없다 1, 2> <시대를 훔친 미술> <위대한 미술책> 등 저서가 있다.



<시리즈 끝>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2302148005&code=960202#csidx837c2ec3fb6ef929c74e564b9ecbc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