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흩날리다 사라지는 송홧가루의 色, 붙잡고 싶었다"

정로즈 2019. 3. 28. 13:21

김병종 신작 개인전 '송화분분', 점으로 채운 전면추상 첫 시도
"애기똥풀 같은 아름다운 색… 왜 저리 빠르게 소멸하는지"

동양화가 김병종(66)씨는 전북 남원의 송동(松洞)에서 자랐다. 소나무 많은 동네다. "어릴 적 노송(老松) 아래서 잠들면 솔바람 소리가 영혼의 모음(母音)처럼 느껴졌다. 배 쓸어주는 손 같기도 하고. 봄이면 송홧가루가 날렸다. 뭉게구름처럼 일어나던 그 노랑의 이동을 지금도 바라보게 된다."

봄이 되자 소나무가 다시 꽃가루를 날리려 한다. 강건과 불변의 소나무가 아니라 가장 연약한 소나무 꽃가루에 집중한 그의 신작 개인전 '송화분분'도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4월 7일까지 열린다. "송홧가루를 애기똥풀색이라 하더라. 절묘한 한국적 색깔, 형이상학적으로 아름다운 이 노랑을 화면에 잡아두고 싶었다." 송홧가루(점)로 가득한 전면 추상도 처음 시도했다. 수분(受粉)하려는 작은 율동이 점점이 모여 거대한 생명의 추상을 완성한다. "송홧가루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사라져버린다. 극히 짧은 지상의 시간이 어쩜 이토록 아름다운가. 아름다운 건 왜 저리 빠르게 소멸하는가."

과천의 자택 뒤뜰 소나무 사이에서 김병종 화가가 자신의 그림 ‘송화분분’을 들고 있다.
과천의 자택 뒤뜰 소나무 사이에서 김병종 화가가 자신의 그림 ‘송화분분’을 들고 있다. /이진한 기자

아내(소설가 정미경)를 너무 빨리 하늘로 보냈고, 2년이 지났다. "뜻밖의 고통과 상처의 시간이었다. 이 기간 집중적으로 송화 연작을 그렸다. 붓을 세우면서 통증을 이겨낼 수 있었다." 가끔 송홧가루가 사람의 넋처럼 생각될 때가 있었다. "어릴 적 어른들이 '어젯밤 누구네 집 지붕 밖으로 노란 혼불이 나가는 걸 봤다'는 얘기를 듣곤 했다. 가끔 소나무 위로 둥둥 떠가는 가루가 혼불처럼 느껴졌다." 1989년 겨울 고시원에서 연탄가스에 중독돼 병원 신세를 진 그는 신선한 바람을 쐬러 산에 올랐다가 언 땅에서 핀 꽃 한 송이를 보고 '생명의 노래' 연작을 피워냈다. 30년이 지나 마침내 꽃가루라는 생명의 최소 단위에 주목하게 됐을 때, 전시 개막식에 찾아온 이어령 전(前) 문화부 장관은 "지금까지 생명 밖에서 생명을 봤다면 이제는 생명 안으로 뛰어들었구나" 평했다.

2018년작 ‘송화분분_12세의 자화상’.
2018년작 ‘송화분분_12세의 자화상’. /가나아트센터

서울대 미대 교수직에서 지난해 정년 퇴임해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예전에는 화면을 그저 도구로 생각했다. 내 상념을 담고 부리는 물질로 여겼다. 이제는 화면 앞을 지날 때조차 조심스럽다. 내가 살날보다 그림이 살아갈 날이 더 많으니까. 생각 없이 그리면 안 될 것 같다." 어릴 적에도, 연구실 주변에도 소나무가 많았다. 지금 그가 살고 있는 경기도 과천 집 뒤뜰에도 소나무 수십 그루가 자생하고 있다. "이 땅에 집을 지은 이유도 소나무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는 집에 송와(松窩)라는 당호를 붙였다.

20여 권의 저서와 '화첩기행' 등을 통해 글쟁이로도 이름난 그는 지난 1월부터 또 다른 개화를 준비하고 있 다. "도시 40여 곳을 명상하는 글을 쓰고 있다. '화첩기행'이 사람 중심의 기록이었다면, 수많은 사람이 살다간 도시에 대한 기록도 필요할 것 같았다."

그의 손가락은 컴퓨터 자판을 걷는 대신 질 좋은 종이와 펜을 쥔다. "나는 말하자면 채색하듯이 글을 쓴다. 글과 그림은 다른 표현이 아니다. 화문(畵文)의 양 날개를 펼칠 것이다." (02)720-1020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28/201903280016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