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아플로네를의 미라보 다리

정로즈 2020. 2. 24. 12:12

미라보 다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그러나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

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손에 손을 잡고서 얼굴을 마주 보자.

우리들의 팔 밑으로

미끄러운 물결의

영원한 눈길이 지나갈 때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흘러간다.

사랑은 흘러간다.

삶이 느리듯이

희망이 강렬하듯이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날이 가고 세월이 지나면

가버린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만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잡지< 파리의 밤 >

 

Le Pont Mirabeau

 

미라보 다리

 

Sous le pont Mirabeau coule la Seine

    Et nos amours

  Faut-il qu'il m'en souvienne

La joie venait toujours apres la peine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그러나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

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날들은 가고 나는 머무네

 

Les mains dans les mains restons face a face

    Tandis que sous

  Le pont de nos bras passe

Des eternels regards l'onde si lasse

 

손에 손을 잡고서 얼굴을 마주 보자

    우리들의 팔 밑으로

  매끄러운 물결의

영원한 눈길이 지나갈 때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날들은 가고 나는 머무네

 

L'amour s'en va comme cette eau courante

    L'amour s'en va

  Comme la vie est lente

Et comme l'Esperance est violente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흘러간다

    사랑은 흘러간다

  삶이 느리듯이

희망이 강렬하듯이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날들은 가고 나는 머무네

 

Passent les jours et passent les semaines

    Ni temps passe

  Ni les amours reviennent

Sous le pont Mirabeau coule la Seine

 

날이 가고 세월이 지나면

    가버린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만 흐른다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날들은 가고 나는 머무네

 

            G. Apollinaire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요점 정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작자 : 기욤 아폴리 네르(G. Apollinaire) / 김붕구 옮김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율격 : 내재율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성격 : 반복적. 운율적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표현 : 평범한 다리를 사랑이라는 주제에 연결시켜 시적 대상으로 승화시킴, 간결하고 소박한 표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구성 :

    1-2연   세월의 흐름과 사랑의 퇴색

    3-4연   사랑과 추억

    5-6연   시간과 함께 잊혀지는 사랑

    7-8연   자연의 반복적인 움직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제재 : 미라보 다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주제 : 지나간 사랑에 대한 회한과 추억, 젊은 시절의 사랑의 아픔과 추억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출전 : <파리의 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내용 연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미라보 다리 : 프랑스 세느 강에 있는 다리. 미라보 다리는 시가 진행됨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1연의 '미라보 - 흐르고',와 7연의 '미라보-흐른다'는 비슷한 구절이지만, 전자는 다리와 강물의 대립을, 후자는 그 둘을 합친 자연의 영원한 모습을 각각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미라보 다리~흘러간다.' : 흐르는 강물의 무상함에 사랑의 슬픔을 투영하는 구절이다. 사랑과 강물의 유사성을 말하고 있다. 그 유사성이란 '흘러간다'라는 속성이다. 아폴리네르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이처럼 덧없는 것이다. 그리고 '흘러간다'는 의미와 '머문다'라는 의미와는 대립되는 움직임의 속성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세월'이 흐르는 동시에 '나'는 그대로 머물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괴로움에 ~ 기쁨을' : 시적 자아는 희망을 갖는다. 그것은 사랑은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지만 그것과는 다른 사랑의 기회는 또 다시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보자면 괴로움 다음에 기쁨이, 기쁨 다음에 다시 괴로움이 계속되고 이 같은 반복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 같은 반복의 주제는 이 시의 중요한 모티브 가운데 하나이다. 이 반복의 이미지는 구체적인 시 형식으로 구현되는데 이 시에서 '밤이여 ~ 머문다.'라는 구절은 네 번이나 나온다. 이 시에는 또한 '흐름'과 '머뭄'이 공존하는데, '세월'이 흐르는 동시에 '나'는 그대로 머물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리와 강물의 관계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밤이여 오라 - 나는 여기 머문다 : 유연한 리듬감을 형성하고, 반복의 모티브를 발전시키고, 흘러가는 강을 연상시키게 하는 효과가 있고, 젊은 시절에 느끼는 사랑과 이별의 슬픔을 심화시키는 동시에 이를 잊지 못하는 고뇌와 아픔을 나타내고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손에 손을 잡고서 얼굴을 마주 보자. : 사랑의 덧없음을 이겨보려고 두 연인이 팔을 맞잡는다. 이 동작은 그 모양에서 다리를 닮았다. 즉, 이러한 행위는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을 이기고자 하는 두 연인의 의지와 사랑을 영원히 지켜 내고자 하는 염원을 담고 있다. 그러나 아폴리네르는 낭만주의 시인들과는 달리 시간의 흐름을 멈추고자 하지는 않았다. 그는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 사랑도 지나간다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세월과 나, 강물과 다리의 대립적인 상태는 7연에 오면 다시 시간과 사랑은 흘러가지만 세느 강과 미라보 다리로 상징되는 자연은 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처럼 이 시에는 대립과 그 대립적인 것의 반복, 그리고 공존 등의 주제가 담겨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해와 감상

 기욤 아폴리 네르가 1921년 <파리의 밤>이란 잡지의 창간호에 발표했던 시이다. 그가 27세 때, 사랑하던 여인과의 이별 후에 쓴 시로서 현실과 추억 속의 갈등이 교차되는 가운데 옛 사랑을 잊지 못하는 시인의 고뇌가 담겨져 있다. 이 시 속에는 못다 이룬 사랑의 아픔과 추억의 되뇌임이 반복되면서, 서정적 자아의 미묘한 갈등이 드러나 있다 그러나 서정적 자아는 세느 강물이란 세월의 무상함 속에 자신의 갈등을 투영하여 한층 성숙한 삶의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미라보 다리 - 흘러간다.'에서는 사랑과 강물의 유사성을 말하고 있다. 그 유사성이란 '흘러간다'라는 속성이다. 아폴리네르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이처럼 흐르는 강물처럼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사라지는 것, 덧없는 것이다. 그러나 '괴로움에 - 기쁨을'에서 시적 자아는 희망을 갖는다. 그것은 사랑은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지만 그것과는 다른 사랑의 기회는 또 다시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보자면 괴로움 다음에 기쁨이, 기쁨 다음에 다시 괴로움이 계속되고 이 같은 반복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 같은 반복의 주제는 이 시의 중요한 모티프 가운데 하나이다. 이 반복의 이미지는 구체적인 시 형식으로 구현되는데 이 시에서 '밤이여 - 머문다.'라는 구절은 네 번이나 반복되어 나온다. 이 시에는 또한 '흐르는 것'과 '머무는 것'이 공존하는데, '세월'이 흐르는 동시에 '나'는 그대로 머물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리와 강물의 관계와도 무관하지 않다. 3연에서는 사랑의 덧없음을 이겨 보려고 두 연인이 팔을 맞잡는다. 이 동작은 그 모양에서 다리를 닮았다. 즉, 이러한 행위는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을 이기고자 하는 두 연인의 의지와 사랑을 영원히 지켜 내고자 하는 염원을 담고 있다.

 그러나 아폴리네르는 낭만주의 시인들과는 달리 시간의 흐름을 멈추고자 하지는 않는다. 그는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 사랑도 지나간다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세월과 나, 강물과 다리의 대립적인 상태는 7연에 오면 다시 시간과 사랑은 흘러가지만 세느 강과 미라보 다리로 상징되는 자연은 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처럼 이 시에는 대립과 그 대립적인 것의 반복, 그리고 공존 등의 주제가 담겨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심화 자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본명은 Wilhelm Apollinaris de Kostrowitzki. 1880. 8. 26 로마(?)~1918. 11. 9 파리. 프랑스의 시인. 20세기초에 프랑스 문단과 예술계에서 번창한 모든 아방가르드 운동에 참가하고 시를 새로운 분야로 안내한 뒤, 짧은 생애를 마쳤다.

폴란드 망명자인 어머니와 이탈리아 장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자신의 혈통을 비밀에 붙였다. 비교적 자유롭게 자란 그는 20세 때 파리로 가서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겼다. 1901년 독일에서 보낸 몇 개월은 그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고, 이때의 경험은 자신의 시적 재능을 깨닫는 데 도움을 주었다. 특히 라인 지방의 매력은 언제나 그의 추억에 남아 있었고, 이 지방의 숲과 전설에 깃든 아름다움은 나중에 그의 시에서 되살아났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국 아가씨인 애니 플레이든을 사랑하게 된 사건이었다. 그는 런던까지 이 여인을 따라갔지만, 끝내 사랑을 얻지 못했다. 이 낭만적인 실연에서 영감을 얻어 유명한 시 〈 사랑받지 못한 애인의 노래Chanson du malaime〉를 썼다. 파리로 돌아온 뒤, 아폴리네르는 문필가들이 자주 드나드는 카페의 단골 손님이자 작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또한 나중에 유명해진 몇몇 젊은 화가들, 즉 모리스 드 블라맹크, 앙드레 드랭, 라울 뒤피, 파블로 피카소 등과 친구가 되었다. 그는 앙리 루소의 그림과 아프리카 조각을 동시대인에게 소개했으며, 피카소와 함께 그림만이 아니라 문학에서도 입체파 미학의 근본 원리를 밝히려고 애썼다. 그는 1913년에 〈입체파 화가들 Peintures cubistes〉을 발표했다.

그의 처녀작 〈타락한 마술사 L'Enchanteur pourrissant〉(1909)는 마술사 메를랭과 요정 비비안이 나누는 이상야릇한 대화를 시적 산문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듬해 그는 기발하고 기상천외한 작품들로 이루어진 생기 넘치는 단편집을 〈이교 창시자 회사 L'Heresiarque et Cie〉(1910)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이어서 격식을 차린 4행련구로 씌어진 〈동물지 Le Bestiaire〉(1911)가 나왔다. 그러나 그의 대표작은 〈알코올 Alcools〉(1913, 영어판 1964)이다. 이 시집에서 그는 자신의 모든 경험을 상상 속에서 다시 체험하면서 때로는 12음절 보격을 가진 정상적인 연으로, 때로는 짧은 무운 시행으로 그 경험을 표현했고, 구두점은 전혀 찍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아폴리네르는 입대하여(1914) 보병 소위가 되었고, 1916년에 머리를 다쳤다. 제대한 그는 파리로 돌아와 상징주의적 소설인 〈살해된 시인 Le Poete assassine〉(1916)을 발표했고,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 3번째 시집 〈칼리그람 Calligrammes〉(1918)을 발표했다. 이 시집을 지배하는 것은 전쟁의 이미지와 새로운 연애에 대한 그의 집착이다. 전쟁터에서 입은 상처로 쇠약해진 그는 유행성 독감에 걸려 죽었다.

희곡 〈티레시아스의 유방 Les Mamelles de Tiresias〉은 그가 죽기 전해에 상연되었다(1917). 그는 이 희곡을 초현실주의 작품이라고 불렀는데, 초현실주의라는 용어가 쓰인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프랑수아 풀랭크는 이 경희곡을 희가극으로 각색했다(초연 1947). 아폴리네르는 시에서 대담하고 무모한 기법을 실험했다. 그의 〈칼리그람〉은 독창적인 활자 배열 덕분에 시이면서 동시에 도안이다. 좀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아폴리네르는 언어의 색다른 조합으로 놀라움이나 경악의 효과를 내고자 했고, 이 때문에 그를 초현실주의의 선구자라고 부를 수 있다. (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초현실주의(超現實主義, Surrealism) (프)Surrealism.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에 유럽에서 일어난 문학 및 시각예술 운동.

초현실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반예술 운동인 초기 다다이즘으로부터 생겨났다. 그러나 초현실주의는 다다이즘처럼 부정 그 자체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대한 적극적인 표현을 강조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과거 유럽 문화와 정치를 주도해왔으며 제1차 세계대전의 공포 속에서도 절정을 이루었던 이성주의가 결국은 파괴를 야기시켰다고 보고 그에 대한 반대를 표방했다. 시인이자 비평가인 앙드레 브르통은 이 운동의 대변자로서 1924년에 '초현실주의 선언'을 공표했다. 그에 따르면 초현실주의는 경험의 의식적 영역과 무의식적 영역을 완벽하게 결합시키는 수단이며, '절대적 실재, 즉 초현실' 속에서는 꿈과 환상의 세계가 일상적인 이성의 세계와 결합될 수 있다고 한다. 주로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이론을 원용하면서 무의식의 세계를 상상력의 원천으로 간주했다. 또한 시인이나 화가에 의해 달성될 수 있는 천재성은 일반적으로 미개발된 무의식의 영역에 대한 접근가능성으로 규정했다.

앙드레 브르통, 폴 엘뤼아르, 피에르 르베르디 등의 시는 전과정에 걸쳐 논리적이 아닌 심리적인, 즉 무의식적인 것에 의해 결정된 생경한 단어들의 병치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게 된다. 초현실주의는 특히 회화에서 많은 공적을 이루었다. 초현실주의 미술은 다다이즘뿐만 아니라 히에로니무스 보스, 프란시스코 고야 등 전 시대의 화가들과 오딜롱 르동, 조르조 데 키리코, 마르크 샤갈 등 동시대 화가들의 환상적이고 기괴한 이미지의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예술작품이 인간심리의 탐구와 그 표현을 촉구하는 수단임을 강조하면서, 방법론적 연구와 실험을 매우 중시한다. 그러나 브르통은 초현실주의 원리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1925년 파리에서 전람회를 열었으나 초현실주의의 역사는 제명과 탈퇴, 인신공격 등으로 얼룩졌다.

장 아르프, 막스 에른스트, 앙드레 마송, 르네 마그리트, 이브 탕기, 살바도르 달리, 피에르 루아, 폴 델보, 호안 미로 등이 대표적인 작가이다. 그들의 작품은 매우 다양하여 초현실주의적 양식으로 범주화해서 요약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각자 나름대로 자기탐구의 수단을 모색했다고 할 수 있다. 그들 가운데 몇몇은 의식의 통제로부터 벗어난 무의식의 세계를 즉흥적으로 표현하려는 1가지 목표만을 추구했다. 한편 미로를 비롯한 화가들은 지고미(至高美)를 형식적 수단으로 해서 개인의 환상, 무의식과 의식을 탐구했다. 이 두 극단은 그 발전가능성의 영역면에서 구별된다. 장 아르프의 작품으로 대표되는 한쪽 극단은 추측할 수는 있지만 불확정적인 생물형태적인 이미지를 창조한다. 보는 사람의 마음에 무의식적인 연상작용을 일으켜 그 끝없는 탐구과정을 통해 창조적 상상력이 스스로 발언하게 하는 것이다. 에른스트·마송·미로 등도 다소 차이는 있지만 이와 비슷한 태도를 보인다. 이러한 태도를 일컬어 유기적·상징적·절대적 초현실주의라고도 했다. 이와 반대되는 극단에서는 명확하고 세밀하게 묘사되었으나 비합리적인 세계를 접하게 된다.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인식 가능한 이미지는 일상적인 맥락으로부터 분리되어 모호하고 역설적이며 충격적인 구조로 재구성된다. 이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논리에 의해서는 드러나지 않는 비이성적인 선천적 감각을 받아들이게 하고, 이에 대한 공감을 유발시킨다. 르네 마그리트는 햄 한 조각이 담긴 접시가 놓여 있는 보통 테이블 하나만 그리는 등 단순하면서도 힘이 있는 표현을 하여 그러한 접근의 가장 직접적인 형태를 보여주었다. 살바도르 달리, 피에르 루아, 폴 델보 등도 이와 유사하지만 좀더 복잡한 형상으로, 현실세계에 꿈처럼 기이한 장면을 결합시켜 표현했다.

그들은 심리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몇 가지 특수한 기법을 고안했다. 나무 등 요철이 있는 재료 위에 종이를 놓고 연필 등으로 문지르는 프로타주, 캔버스를 긁어 자국을 만드는 그라타주 등은 에른스트가 개발한 것으로 그 불완전한 이미지가 보는 이의 마음속 에서 완성되도록 하는 것이다. 작가의 무의식으로부터 분출하는 혼돈의 이미지를 다듬지 않고 즉흥적으로 기록하는 자동기술적 소묘(→ 자동기술법), 일상 생활에서 취한 오브제 등도 주요기법에 속한다. 초현실주의는 내용적 측면과 자유로운 형식을 강조함으로써 형식주의로 치우치고 있던 당시 입체파 미술의 대안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내용을 강조하는 회화적 전통을 현대 미술에 이어준 공로가 크다. 특히 유기적 초현실주의는 1940년대와 1950년대에 비재현적인 형태로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던 미국의 추상 표현주의에 영향을 미쳤다. (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초현실주의 시의 특징

 초현실주의란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이나 욕구가 논리적인 통제를 받기 이전의 상태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예술의 원리로 강조하는 경향으로, 꿈과 현실, 지상과 천상, 의식과 무의식, 현상과 본질의 대립과 통일을 목표로 한다.

자동 기술법은 초현실주의 시인들이 쓰던 시의 수법으로서, 꿈과 무의식의 내면 세계에서 들려오는 이미지를 그대로 기술하는 수법이며, 브르통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프로이트의 심리학을 응용하여 정신병 환자에게서 들으려고한 임상적인 테크닉을 자기 자신에게 돌려 내면의 소리를 시로 옮겨 놓았는데, 이것이 곧 자동 기술법이다.

이 같은 수법은 프루스트나 조이스가 '의식의 흐름'과 '내적 독백'을 소설에서 표현한 것을 브르통은 시에다 썼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초현실주의 시는 무의식적 이미지의 비논리적 몽타지가 계속되는 말의 덩어리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심하게 표현하면 몽유병자의 무의식적인 넋두리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시라고 할 수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다다이즘(Dadaism)

(프랑스어 dada는 '목마'를 뜻함)

20세기 초반 주로 취리히와 뉴욕·베를린·쾰른·파리 및 독일의 하노버 등지에서 활발했던 허무주의적 예술운동.

이 운동에 참여한 여러 사람들이 '다다'(또는 다다이즘)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유가 여러 가지로 설명되고 있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설에 따르면, 1916년 취리히에 후고 발이 운영하는 볼테르 카바레(카페)에서 장 아르프, 리하르트 휠젠베크, 트리스탄 차라, 마르셀 장코, 에미 헤닝스를 비롯한 젊은 예술가와 반전주의자(反戰主義者)들이 모임을 가지곤 했는데 한번은 프랑스어-독일어 사전에 끼워져 있던 종이 자르는 칼이 우연히 '다다'라는 단어를 가리키고 있어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이 단어가 정통주의 미학에 반기를 든 자신들의 예술활동과 반전운동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이를 채택했다고 한다. 그들은 부르주아지의 가치관을 혐오하고 제1차 세계대전에 절망하여 이같은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그후에 다다이즘 운동이라고 부르게 된 이 예술경향의 선구자였으며 마침내 대표적인 다다이즘 작가가 된 인물로 마르셀 뒤샹이 있다. 그는 1913년에 최초로 기성자료를 이용한 작품인 자전거 안장에 바퀴를 올려놓은 〈자전거 바퀴 Bicycle Wheel〉를 만들었는데 이 작품은 오늘날에는 남아 있지 않다.

미국에서는 앨프레드 스티글리츠의 뉴욕 화랑 '291'과 월터 아렌스버그스의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다다이즘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졌는데, 이 두 사람은 다 부유한 예술 후원자였다. 미국의 다다이즘 운동은 취리히의 다다이즘 운동과는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생겨났지만 비슷한 성격을 지녔으며, 맨 레이와 모턴 샴버그 및 프랜시스 피카비아 같은 예술가들이 여기에 참여했다. 이들은 예술작품만이 아니라 〈블라인드 맨〉·〈롱롱 Rongwrong〉·〈뉴욕 다다〉 같은 정기간행물을 통하여 당시의 미학적 규범을 타파하려 했다. 피카비아는 미국과 유럽을 왕래하면서 뉴욕·취리히·파리에 있는 다다이즘 예술집단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그는 1917~24년에 바르셀로나·뉴욕·취리히·파리에서 다다이즘 잡지 〈291〉을 발행했다.

취리히 다다이즘 운동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인 휠젠베크는 1917년 이 운동을 베를린에 소개했는데, 그곳에서는 다다이즘 운동이 좀더 정치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 운동에 참여한 독일 예술가로는 라울 하우스만, 한나 회흐, 게오르게 그로츠, 요하네스 바더, 휠젠베크, 오토 슈말하우젠, 빌란트 헤르츠펠데와 동생 존 하트필드(정식 이름은 헬무트 헤르츠펠데인데 독일 국수주의에 항의하여 영어식으로 이름을 바꿈)가 있다. 이 예술가들이 주로 썼던 표현수단은 풀로 붙인 사진 조각에 글자로 된 메시지를 덧붙이는 사진 몽타주 기법이었다. 존 하트필드는 특히 후기의 반나치 작품들(예를 들어 〈카이저 아돌프〉)에서 이 기법을 가장 효과적으로 썼다. 뉴욕·취리히의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베를린의 다다이즘 예술가들도 공개 모임을 주최하고 기괴한 광대짓으로 청중에게 충격과 분노를 안겨주었다. 그들도 역시 〈다다 클럽〉·〈데르 다다〉·〈사람마다 자기 축구공을 Jedermann sein eigner Fussball〉·〈다다 알마나흐〉 등과 같은 간행물을 발간했다. 제1회 국제 다다 박람회는 1920년 6월 베를린에서 열렸다.

다다이즘 활동은 독일의 다른 도시에도 번져갔다. 1919년과 1920년 쾰른에서 이 활동에 참여한 주요인물은 막스 에른스트와 요하네스 바르겔트였다. 하노버의 쿠르트 슈비터스도 다다이즘 운동에 참여했는데, 그는 자신의 콜라주와 구조물 및 문학작품을 메르츠(Merz)라고 이름붙였다. 슈비터스는 예술작품을 창조할 때 다다이즘적인 소재(하찮은 잡동사니들)를 사용했지만, 다다이즘의 반예술적 특징과는 달리 세련되고 아름다운 미학적 효과를 거두었다. 파리의 다다이즘 운동은 창시자의 한 사람인 시인 트리스탄 차라의 영향을 받아 미술보다는 문학에 역점을 두었다. 다다이즘 계열의 무수한 소책자와 평론지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리테라튀르 Litterature〉(1919~24)였다. 이 잡지에는 앙드레 브르통, 루이 아라공, 필리프 수포, 폴 엘뤼아르, 조르주 리브몽 데세녜의 글이 실렸다. 그러나 1922년부터 다다이즘 운동은 시들기 시작했고, 참여자들은 초현실주의로 그 방향을 바꾸었다.

다다이즘은 20세기 예술에 폭넓은 영향을 미쳤다. 허무주의적이고 반합리주의적인 사회비판과 예술의 형식상의 모든 인습을 무차별 공격하는 태도를 그대로 물려받은 후계자는 없었지만, 기괴하고 불합리하고 환상적인 것에 몰두하는 태도는 초현실주의 운동에서 열매를 맺었다. 우발적이고 우연한 성질을 띤 다다이즘 예술가들의 창조기법은 나중에 초현실주의자들과 추상적 표현주의자들에게 계승되었다. 개념예술도 역시 다다이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예술가의 정신활동('지적 표현')이 창조된 물체보다 더 중요하다고 맨처음 주장한 사람은 바로 마르셀 뒤샹이기 때문이다. 金碩禧 옮김  (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희망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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