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100년 기획 - 말모이 100년,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
[22] 전통 건축에 깃든 우리말
'알기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 쓴 문화재 전문가 김왕직 교수
"속담 소재로도 폭넓게 쓰인 한옥, 눈꼽째기창·살미·까치구멍집…
용어 1만개 중 80%가 순우리말… 서양 건축에 점점 밀려나 아쉬워"
경기 용인시 명지대 건축대학 연구실에서 김왕직(59) 교수를 만난 지난 17일은 수도권에 기습적 폭설이 쏟아진 다음 날이었다. 연구실 앞 교육용 한옥 무루정(無累亭) 처마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김 교수는 대학을 졸업하고 1년쯤 현대 건축 설계 실무를 하다가 전통 건축과 문화재 분야에 뛰어든 전문가다. 지난해까지 20쇄를 찍은 '알기 쉬운 한국 건축 용어 사전'(2007)을 썼고 올해 초엔 한국건축역사학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한옥이 귀해진 요즘도 말은 속담에 남아서 현대인의 언어를 풍부하게 해준다. 분수에 맞지 않는 뭔가를 일컫는 '개 발에 편자'를 건축식으로 변용하면 '거적문에 돌쩌귀' '돼지우리에 주석 자물쇠'가 된다. '뒷간에 옻칠하고 사나 보자'라는 경멸조 속담에선 구린내 나는 탐욕을 배설 공간으로 불러낸다. "전 재산을 투자해 짓는 집은 누구에게나 가장 밀접하고 소중한 공간입니다. 그렇다 보니 단순 기능적 차원을 넘어 구석구석까지 민속적 성격을 띠게 되고, 속담 소재로도 폭넓게 쓰이게 됐을 것으로 봅니다."
한국 건축 용어는 총망라하면 1만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김 교수는 이 중 순우리말이 80% 이상일 것으로 추정했다. "관청 건축의 준공 보고서 격인 의궤에는 한자 표기가 나오지만 그건 작성자인 관리들이 한자를 빌려 현장 용어를 표기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통나무를 포개서 쌓아올리는 건축 방식인 '귀틀'은 귀 이(耳) 자와 틀 기(機) 자의 훈을 발음으로 빌려 '耳機'라고 썼지요." 김 교수는 "기둥을 가로지르는 보 역시 樑(량)이라고 쓴 중국·일본과 달리 우리는 褓(보)라고도 썼다"면서 "표기만 한자를 빌렸을 뿐 대부분 고유어"라고 했다.
한자를 빌리지 않고 순우리말 그대로 남은 용어도 있다. 이 중엔 한국 건축의 독자적 공간 구성을 지칭하는 것이 많다. "누꿉이라고도 하는 '눈꼽째기창'은 눈곱만 하다는 데서 온 말입니다. 밖의 기척을 살피게끔 작게 낸 창인데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습니다. 한국인의 기지를 보여주는 장치죠."
전통 건축 속 우리말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서양 건축이 들어오면서 우리 용어를 쓸 일이 줄어든 결과다. 김 교수는 "매일 보는 기둥, 벽, 천장은 누구나 알지만 살미(보와 같은 방향으로 놓인 공포 부재)나 까치구멍집(지붕 양측면 ㅅ자 모양 부분이 매우 작은 집)은 모른다"며 "없으니까 잊어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학생들도 서양보다 한국 건축사를 어려워합니다. 말을 모르니까요. 영어로 된 내용은 쉽게 찾아보는데 한자 표기는 낯선 것 같아요."
전통 건축 용어는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말도 제각각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문헌·용어 연구가 부족했고 장인들의 말을 지역별로 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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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2/27/202002270023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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