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고대 그리스 최초의 여성 누드상

정로즈 2020. 4. 21. 10:30
입력 2020.04.20 21:30 | 수정 2020.04.20 23:39

프락시텔레스,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 기원전 350년경 원작의 로마 시대 복제품, 대리석, 높이 약 207cm, 로마 바티칸 박물관 소장.
프락시텔레스,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 기원전 350년경 원작의 로마 시대 복제품, 대리석, 높이 약 207cm, 로마 바티칸 박물관 소장.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목욕하려고 옷을 벗었는데 누군가 숨어서 훔쳐보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스 고전기 미술을 대표하는 전설적 조각가 프락시텔레스(Praxiteles·기원전 395~330년경)는 여신이 시선을 돌리며 몸을 가리려는 순간을 2m 높이 대리석상으로 표현했다. 원작은 남아있지 않으나 이 상을 비롯하여 로마 시대에 제작한 크고 작은 복제품 여러 점과 기록에 의존해 그 면모를 짐작할 수는 있다.

프락시텔레스의 아프로디테는 고대 그리스에 등장한 최초의 여성 누드상이었다. 당대인들은 눈앞에 드러난 풍만한 여신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치 못했고, 심지어 떠들썩한 칭송을 듣고 아프로디테가 직접 내려와 조각을 본 뒤 '프락시텔레스가 언제 내 나신(裸身)을 봤는가' 하며 놀랐다는 등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 상은 이후 소아시아 끝에 있는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 신전에 안치됐다. 크니도스 근해의 파도가 워낙 험하다 보니 바다에서 태어난 아프로디테가 선원들을 보호한다고 믿고 바다를 내려다보는 절벽 위에 사방으로 열려 있는 원형 사원을 지었던 것. 그러나 여신의 누드상을 그곳에 봉헌하자 오직 아름다운 여체를 감상하고자 몰려드는 성지 순례 인파로 크니도스의 경제가 호황을 누릴 지경이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관람객 모두가 목욕하는 여신을 은밀히 훔쳐보는 신화 속 인물의 기쁨을 마음껏 누렸던 셈이다.

그런데 아프로디테는 어째서 이토록 노골적인 욕망의 눈길 앞에 발가벗고 섰는데도 여유 있는 자태로 우아하게 움직이는가. 그건 훔쳐본 이가 누구든 신을 모욕한 죄로 곧 처참하게 죽게 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신이든 인간이든 남을 훔쳐보는 건 큰 벌을 받을 중죄가 아닌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20/202004200384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