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휑한 눈망울의 목이 긴 여인… 오늘도 그 사내를 기다리네

정로즈 2020. 3. 15. 11:29
휑한 눈망울의 목이 긴 여인… 오늘도 그 사내를 기다리네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  모딜리아니와 잔의 애달픈 사랑이야기를 전해주는 로통드 카페에는 잔의 복제초상화 그림이 여럿 걸려있다.(김병종, 기다리는 여자, 27×39㎝, 종이에 먹과 파스텔, 2020)



(20) 파리 카페 ‘라 로통드’

모딜리아니와 잔 처음 만난 곳
폐병 시달리다 요절한 36세 화가
그가 떠나자 만삭 상태서 투신한 잔

우수·슬픔·그늘 드리워진 초상…
쌉싸름한 에스프레소 위에 내려앉아


라 로통드(La Rotonde)와 르 돔(Le Dome)은 몽파르나스 바뱅(Vavin) 거리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유서 깊은 카페 겸 레스토랑이다. 라 로통드는 모딜리아니와 그의 아내 잔이 처음 만난 곳이라서 유명하고, 르 돔은 피카소, 브랑쿠시, 자코메티, 샤갈 등이 떼로 드나들었던 곳이래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들은 밤이 이슥한 늦은 시각까지 이 두 레스토랑을 번갈아 가며 술 마시고 토론하기 일쑤였단다. 투어리스트보다는 프랑스인이 많이 찾는 곳이라는 이 두 곳의 식당. 감자나 생선요리가 일품이기 때문이라는데 글쎄, 내가 먹어본 결과로는 거기서 거기인 것 같았는데 말이다.

로통드로 말하자면 붉은색의 작은 모딜리아니 미술관이라고 하면 맞을 것 같았다. 1층, 2층, 바닥, 의자, 천장 할 것 없이 모두 붉은색으로 꾸며진 데다 전등마저 붉은 숄을 달아 다분히 환상적이었다. 모딜리아니가 아내 잔을 모델로 그렸다는 목이 긴 여인의 복제미술품들이 곳곳에 걸려 있다. 이 모퉁이 식당을 돌아 골목으로 들어가면 그 유명한 아카데미 그랑 쇼미에르가 나온다. 초창기 한국인 화가들도 많이 드나들었던 곳인데 이름과는 달리 자그마한 미술학원이었다. 하지만 실기 위주의 교수진이 좋아 일본, 중국, 한국 등 화가지망생들이 누드 데생 등을 배우며 파리 진출의 교두보로 삼았던 곳이다. 유교문화권에서 온 학생들이 그 옛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서양 여인의 나상을 대했을 때 그 기분이 어땠을까 싶다.

문득 저 거리를 어울려 쏘다녔을 젊은 날의 그 미술가들을 떠올린다. 내가 앉은 테이블 위의 벽에 걸린 초점 없는 목이 긴 여인의 눈도 그대로 밖의 햇빛 쪽으로 향해있다. 사람들은 이 여인을 모딜리아니의 여인으로 부른다. 평생 뇌막염과 폐병에 시달리며 가난과 싸우다 서른여섯의 나이로 죽어간 남자. 그래서일까. 여인의 얼굴은 정물처럼 차갑고 입가에는 미소 한 가닥 찾아볼 수가 없다. 우수와 슬픔과 그늘이 복잡하게 드리워진 초상. 카페 로통드에는 여기저기 이런 마르고 목이 긴 여자의 그림들이 걸려 있다.

그림 속의 여인은 모딜리아니의 아내 잔으로 알려져 있는데 잔은 남편의 죽음 후 만삭의 몸으로 투신자살한 비련의 여인, 미술가의 슬픈 사랑이야기라면 흔히들 조각가 로댕의 여인으로 알려진 카미유 클로델을 말하지만 짧은 생의 괴로움의 총량으로 본다면 잔이 더할 것만 같다. 클로델은 강제적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며 재능과 신체의 억압을 당했지만 잔은 온몸으로 한 남자를 사랑했고 그 사랑이 끝났을 때 스스로 배 속에 그가 남겨둔 씨를 안고 죽음의 길을 떠났던 것이다. 이제 세월은 흘러 그 비극의 연사(戀事)는 카페 로통드에서 애틋한 사랑의 이야기로 화사하게 다시 피어오른다.

그중에는 간혹 햇살이 피부를 간지럽히는 것을 잔의 영혼이 살갗을 어루만지는 것으로 느끼는 이도 있고 조용한 선율 속에서도, 가만, 저 소리를 들어봐, 쿨럭쿨럭, 화가가 돌아오고 있잖아 하고 느끼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카페 로통드는 슬픔의 기억이 바뀌어 순애의 장소로만 알려져 있다. 그곳에 전설처럼 서려 있던 한 남자와 여자의 아픈 기억이 쌉싸름한 에스프레소 위에 살짝 얹힌다. 저녁이면 고픈 배를 로통드의 파스타와 샌드위치로 채우며 값싼 와인 한 병을 놓고 몇 시간씩이나 이야기꽃을 피웠을 그 날의 미술가들. 이제 그 시대도 흘러갔고 사람 또한 갔지만 그림은 남아 있다. 휑한 눈망울의 목이 긴 그림 속의 여인은 그렇게 오늘도 오버의 깃을 올리며 들어서는 한 남자를 기다리고 있다.

화가·서울대 명예교수


■ 모딜리아니와 잔

가난한 화가·부호의 딸… 비극으로 끝난 애절한 사랑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1884∼1920·왼쪽 사진)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파리로 건너와 활동했다. 피렌체의 미술아카데미와 베네치아를 거쳐 몽마르트르에 정착했고 다시 몽파르나스로 옮겨와서는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와 교유해 여러 점의 석조 두상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시인이자 화상인 레오폴드 즈보로스키(Leopold zborwski)의 조언을 받아들여 회화 쪽으로만 전념하게 되고 선의 리듬감과 중후한 마티에르를 살려 사람의 얼굴을 길쭉하게 그리는 작품들을 발표하게 된다.

1917년 부유한 가정의 잔 에뷔테른(Jeanne Hebuterne·오른쪽)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잔은 폐결핵을 앓고 있는 모딜리아니를 헌신적으로 돌본다. 둘은 결혼하지만 모딜리아니 작품은, 전혀 화상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과 건강의 위기 속에서 불안하고 짧은 결혼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다가 만난 지 불과 3년여 만에 모딜리아니는 결핵성 뇌막염으로 쓰러져 36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는데 잔은 그 이튿날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때 그녀의 배 속에는 8개월 된 아이가 있었다. 모딜리아니는 짧은 작가적 삶 속에서 ‘붉은 누드’ ‘잔 에뷔테른의 초상’ 등 주로 강렬한 색채와 두꺼운 재질감의 누드와 여인초상들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