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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 -이선

정로즈 2011. 2. 12. 04:09

[ESSAY] 말 한마디

이선 소설가

"치매 걸린 시어머니가 며느리인 내게 어머니라 불러
'니가 시방 참 황송허게 산다~잉'
친정어머니 그 말씀 덕분에 어머니란 말 들어도 괴롭지 않아"

시아버님은 엄격하셨다. 손자들에게도, 며느리들에게도 어렵기만 한 어른이셨다. 나는 아주 사소한 일로 시아버님을 이해할 수 있게 됐고 생활에 힘을 얻었다.

어느 날 내가 차린 진짓상을 받으시다가 말씀하셨다. "거참, 맛이 매우 훌륭하다." 듣기 좋으라고 던지는 과장되거나 의례적인 말씀이 아니었다. 오히려 하마터면 듣지 못했을 만큼 무심하게 말씀하셨다. 미처 듣지 못한 다른 식구가 "뭐라고 하셨냐"고 묻자 순진한 표정과 진솔한 말투로 똑같은 말을 반복하셨다.

특별히 귀한 재료로 만든 음식도 아니었고, 유난히 맛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우연히 그날 맛깔스럽게 드셨던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귀로 달려갔다.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내 음식을 먹고 나의 노력과 정성을 그토록 점잖게 대접해주는 말을 누구에게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시아버님의 그 한마디는 지금까지도 내 인생에서 힘이 되고 있다.

세 아이를 낳은 뒤 어렵사리 발을 내디딘 문단(文壇)은 막막한 사막이었다. 나는 데뷔 작품을 심사해 주신 인연으로 과분한 한 스승을 만났다. 소설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스승을 뵈러 갈 때면 설렘보다 더 큰 부끄러움이 앞섰다. 간신히 스승 앞에 앉으면 감히 소설에 대해 운운할 수 없어서 엉뚱한 말로 설레발을 칠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내 졸작을 묶은 책이 나오면 염치없이 드리고 나오는 걸음이 허방을 짚기 일쑤였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괜히 드렸다는 후회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책을 드리고 온 뒤 스승의 전화를 받았다. "나 그 여자허고 연애 한번 해보고 싶습디다." 내 작품 속의 인물이 맘에 들었다는 스승의 말씀에 나는 힘을 얻었다. 설령 그것 하나 외에는 더 읽을 게 없는 작품이라고 해도 다시 일어나 사막을 걸어갈 힘을 주기에 충분한 말씀이었다.

몇 해 전 돌아가신 시어머님을 한동안 모시고 살았다. 시어머님을 모시게 되었다고 하자 어머니는 갓난아이와 노인은 돌보기 나름이라고 하셨다. 남달리 총명하셨던 시어머님께서는 뜻밖에 치매 증세로 고생을 하셨다. 처음에는 조금 이상하다 싶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정도였는데, 점점 예상치 않은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행동뿐 아니라 언어장애가 생겨서 거의 모든 말을 '어머니'라는 말로 대신했다. 그리고 종일 "어머니"를 부르며 앉은뱅이걸음으로 온 집안을 돌아다니셨다. 며느리인 나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시어머님과 함께 살면서 나는 수없이 마음의 죄를 지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친정어머니는 시어머니 때문에 괴로워하는 내 하소연을 다 듣고 나시더니 간단명료하게 결론을 내려주셨다. "야, 근게 니가 시방 참 황송허게 산다~ 잉." 시어머니에게 '어머니' 소리를 듣고 사니 황송하지 않으냐는 말씀이었다. 그 말씀에 나는 숨이 넘어가라고 웃었다. 그러나 나중엔 반성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말씀 덕분에 종일 귀에 따갑게 들리는 시어머님의 "어머니"라는 말이 괴롭지 않았다. 그나마 내 죄가 덜해질 수 있었다.

요즘 우리의 말은 참을 수 없이 가벼워진다. 가정이나 학교, 통신 매체, 종교 단체, 정치판에서도 말은 제멋대로 갈기를 휘날리며 사방으로 날뛴다. 점점 머리는 능란하게 쓰게 되는 반면 마음은 쓰지 않으려는 탓이기도 하지만 사람은 편해질수록 점점 더 이기적이 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을 하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내 말을 듣는 타인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아마도 말로 상처를 주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사납게 헝클어진 내 기분대로 하는 말이 아니라 앙금이 가라앉아 맑아진 물을 조심스럽게 두레박으로 건져 올리는 말, 그런 말이라면 누구에게든 위로와 용기를 주게 될 것이다.

이기적이 아닌 이타적인 말을 하기란 쉽지 않다. 말은 무의식중에 자기의 생각이나 마음을 내보여준다. 그러기에 평상심을 갖고 살지 않는 한 자연스럽게 그런 이타적인 말을 하기가 어렵다. 내게는 가까이에 그런 분들이 계시는 행운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누구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주며 살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