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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일자 제 칼럼입니다

정로즈 2011. 2. 1. 21:45

 

 

 

2월1일자 제 칼럼입니다

                                       홍헌표기자

 

 

 

제 지갑 안에는 특별한 ‘증’이 하나 있습니다. 등록번호 010812XXXX, 유효기간 2008년 9월 6일~2013년 9월 5일. 암 환자임을 보여주는 ‘중증환자 등록 증명’입니다. 이 증만 있으면 암 관련 진료비 등을 5%만 내도 됩니다. 유효기간이 딱 5년인데, 최초 암 진단 후 5년 이내에 재발·전이가 없으면 암이 완치됐다고 판정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지금 제 몸에서는 암세포가 보이지 않습니다. 2008년 대장암 수술을 받은 후부터 줄곧 그랬고, 한달 전 검사 때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 2년 7개월을 더 ‘암 환자’로 살아야 합니다. 병원에 가면 아직 암 환자 ‘대우’를 받습니다. 2년 4개월 만에 복귀한 직장에서 동료와 친구들이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다”며 눈물을 글썽거리며 기뻐해 주었습니다. “40대 중반의 나이가 위험한 시기라고 하잖아”라고도 하며 걱정도 해줍니다. 친척들도 혹시나 잘못 될까 봐 안부 인사도 제대로 못 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도 저는 여전히 암 환자입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다 나은 거야?” “좋아졌지?” “치료는 어느 병원에서 받는데?” 궁금해서, 걱정스러워 하는 말들입니다. 매번 같은 대답을 하다 보니 저도 지치지만, 저를 걱정해주는 마음을 생각하면 그리 짜증 낼 일은 아닙니다.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상세하게 설명을 해줍니다. “대장, 정확히는 S결장에 1.44.6㎝짜리 암 덩어리가 있었다. 폐와 간에는 전이되지 않았지만 림프절에 조금 번져 있었다. 15㎝를 잘라내고 항암치료를 받았다. 3기 진단을 받았지만, 지금은 멀쩡하다.”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 다만 “병원에서는 의학적으로 환자로 보지만, 나는 그런 생각 안 하고 살고 있다”는 말은 빠트리지 않습니다.

사실 제 스스로는 암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잊고 지냅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식이요법과 명상, 이것은 ‘투병’이 아니라 ‘건강 지키기’라고 생각합니다. 투병이란 단어는 왠지 우울하고 비관적인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죽음이란 현실과 맞닥뜨릴 때 튀어나오는 본능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재작년에 고(故) 장영희 교수가 세상을 떠났을 때 한동안 편히 잠들지 못했습니다. 고인과 특별히 인연은 없었지만 나를 든든하게 지켜주던 ‘암 투병 동지’라 여겼기에 제게도 그런 똑같은 일이 어느 날 닥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제 몸은 자신감을 가질 만큼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고, 삶보다는 죽음이란 단어를 더 자주 떠올렸던 때였습니다. 1년 전 암으로 선종하신 고(故) 이태석 신부님이 저와 비슷한 시기에 저와 똑같은 대장암 진단을 받고 투병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제 마음은 무거웠습니다.

2008년 9월 8일 병원에서 암 통보를 받았던 날, 머릿속이 텅 빈 듯 멍해졌습니다. 갑작스러운 혈변으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은 지 사흘 만의 일이었습니다. “전이가 없으니 나을 수 있다”는 의사의 희망적인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반나절이 흘렀습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나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았던 죽음이란 단어가 내 눈앞에 닥쳐왔음을 실감했습니다. 가족과의 이별을 떠올리게 된 것은 하얗게 밤을 새우고 난 다음 날 아침이었습니다.


암 수술을 받고 난 뒤 명상과 기도를 통해 간신히 마음을 추슬렀습니다. 그러나 몸 한구석에서 작은 통증이 느껴지고 화장실에 자주 가는 일이 생기면 불길한 느낌에 사로잡히곤 했습니다. 가족들에게, 저 자신에게 짜증 내는 일도 잦아졌습니다.


그럴 즈음 내게 힘이 되어 준 것은 암 투병 중인 이해인 수녀님의 글이었습니다. 2009년 12월 4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12월의 편지’였습니다. “병이 주는 쓸쓸함에 맛 들이던 어느 날 나는 문득 깨달았지요. 오늘 이 시간은 ‘내 남은 생애의 첫날’이며 ‘어제 죽어간 어떤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어하던 내일’임을 새롭게 기억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지상의 여정을 다 마치는 그날까지 이왕이면 행복한 순례자가 되고 싶다고 작정하고 나니 아픈 중에도 금방 삶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마음엔 담백하고 잔잔한 기쁨과 환희가 물안개처럼 피어올라 전보다 더 웃고 다니는 내게 동료들은 무에 그리 좋으냐고 되묻곤 했습니다.”


수녀님의 글은 내게 희망이었습니다. 거짓말처럼 그 순간 저의 삶은 달라졌습니다. 저는 낫게 해달라는 청원 기도보다는 오늘도 저와 제 가족을 편히 잠들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합니다. 많이 웃습니다. 밥 안 먹던 둘째 딸이 맛있게 밥 한 그릇을 뚝딱 먹어치우면 환하게 웃으며 기뻐했고, 집 앞 공원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손뼉을 치며 탄성을 질렀습니다. 마음이 평화로워지니 몸도 살아났습니다. 매일 스스로를 치유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암과 맞설 수 있는 힘을 나타내는 백혈구와 림프구 수치가 안정권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습니다.


암투병 하면 보통 고통, 우울, 죽음이란 단어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암과 싸워 이긴 사람들은 희망과 사랑, 행복을 더 자주 말합니다. 삶의 끈을 꼭 붙들기 위한 본능입니다. 회사 동료들은 “스트레스받지 말고 일하라”고 격려하곤 합니다. 그러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쯤이면 눈도 시리고 몸은 무겁습니다. 그럴 때면 나는 동료들에게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큰 소리로 인사를 합니다. 그 한마디에 피로가 절로 풀립니다. 새벽마다 집 앞 성당에 갑니다. 미사 시간 중에 “오늘도 많이 웃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암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