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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무엇으로 위대한가 -구자명

정로즈 2016. 1. 25. 16:42

예술가는 무엇으로 위대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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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명 / 소설가

지난주 오랫동안 별러 온 전시회에 다녀왔다. 당대 최고 부호들이 작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섰다는 ‘추상 표현주의의 거장’ 마크 로스코의 국내 최초 대규모 전시회. 한때 미국 영문학자 제임스 브레슬리가 집필한 로스코의 평전을 번역해볼 생각도 했었는데 마땅한 출판사를 찾지 못해 아쉽게 접었던 나로서는 더없이 반가운 기회였다. 해외에서 그의 실물 작품 몇 점을 감상한 이후로 머릿속에 로스코 ‘방’이란 게 생겨버린 느낌을 갖고 있는 데다 그의 범상치 않은 생애가 소설가적 흥미를 끌었기 때문이다.

전시가 시작된 지 두 달이 넘었고, 평일 낮 시간이라 비교적 한산하리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전시장은 꽤나 붐볐다. 아마 이날 찾아온 관람객 대부분도 이전에는 로스코에 대해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가, ‘스티브 잡스가 사랑한 화가’니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니 하는 선정적인 홍보 문구들에 이끌려 걸음 한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로스코는 그가 평생 거주하며 활동했던 미국에서도 미술계 바깥의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비대중적인 작가다. 사후는 물론 생존 당시에도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누려온 앤디 워홀과 비교해 보면 로스코가 얼마나 대중적인 가치와 동떨어진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다. 그는 누군가로부터 워홀을 처음 소개받았을 때 한마디 인사도 없이 바로 돌아서서 가버렸다고 한다. 화가로 활동한 지 수년 만에 일약 스타 작가가 돼버린 워홀과 달리 로스코는 성공의 영역에 진입하는 데 25년 이상이 걸렸고, 그 후 누리게 된 부와 명성의 정점에서 그것들이 더는 의미 없는 세상으로 가버렸다.

이때 그는 별거 중이긴 했지만 아내와 두 아이가 있었고, 따로 만나는 젊은 여자 친구도 있었다. 고혈압과 동맥류로 건강이 예전 같지 않았고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었지만, 그는 자기가 ‘면접심사’를 해서 그림을 팔고 싶은 사람한테만 팔 정도로, 무릇 창작자라면 가져 보고 싶을 최상의 권리 행사가 가능한 극소수의 예술가였다. 그런 그가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이다.

동맥을 끊어 낭자한 피 속에 죽어갈 자기 종말을 예시한 듯한 섬뜩함이 느껴지는 그의 마지막 작품 ‘무제(레드)’ 앞으로 한 무리의 단체 관람객이 몰려오는 걸 보며 서둘러 전시장을 빠져나왔다. 예술가의 가치가 그 생이 불우할수록 후대에 와서 높게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 환기돼 순간 현기증이 일었다. 전시실 밖에 놓인 벤치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앉았노라니 불우하고 위대한 예술가의 또 다른 유형이 떠올랐다.

이중섭. 마크 로스코가 성공의 정점에서 생을 마감한 불우한 예술가라면, 실패의 정점에서 생을 마감한 이중섭은 어떻게 평가될 수 있을까? 그의 현실적 불우는 로스코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참담했다.

미칠 듯이 사랑한 처자식과 생이별하고, 부와 명성은커녕 소속처도, 사회적 보호도 없이 떠도는 동안 영양실조와 간염으로 망가진 육신으로 갓 마흔에 절명해버린 그. 절친 K 시인이 임종 시에도 이름을 부르며 그리워했던 절대적 순수성 때문에 현실적인 제 몫을 하나도 챙기지 못했던 그. 피카소든 마티스든 만나서 실제로 ‘대보면’ 알 거라며, 자신이 얼마나 많이 습작하고 자나 깨나 작업을 쉬지 않는지를 천진하게 자랑했던 그. 화폭이라곤 무슨 종이 쪼가리든 빈 면만 있으면 다 그렸고, 물감이라곤 공업용 페인트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담뱃갑 속 은박지로도 자기만의 고유한 기법을 창안해 작품을 만들어내는 불굴의 작가 정신을 보여줬던 그. 전시회에서 그림을 어렵게 팔고도 그것을 산 사람에게 미안해하며 다음에 더 좋은 그림을 그려 바꿔주겠노라며 머리를 조아렸던 그. 얼마간 지인의 집에 머물며 지내는 동안 무위도식하는 죄를 그렇게나마 조금 갚으려 한다며 첫새벽에 일어나 마당과 대문 밖을 빗자루로 쓸곤 했다던 그, 이중섭.

오만한 패기로 가득 찼던, 그러나 자신의 성공과 주어진 것들에 만족하지 못해 늘 결핍과 불안에 시달렸던 로스코. 그가 이중섭의 처지에 놓였더라도 그런 종말을 선택했을까? 한편, 이중섭이 로스코처럼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환경에서 마음껏 자기 재능을 펼치고 현실적인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면 계산을 모르는 그의 극단적 순수성이 유지될 수 있었을까?

둘 다 그 삶이 비극적으로 마무리됐지만 그들의 예술은 어떠한 인간적 비극도 훼손시킬 수 없는 지극한 미의 세계를 열어 보였다. 그러니 인간적 불우를 위대한 예술가의 필요충분조건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예술이 특정한 형태를 갖도록 하는 개성적 동인이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로스코는 자신이 속한 현실 세계 사람들이 그림을 통해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려 했고, 이중섭은 현실의 안팎을 넘나들면서 이쪽과 저쪽이 어우러지는 세계를 그려 보였다. 로스코는 말년에 로스코 경당 등에 보낸, 피안을 명상하는 그림들을 그렸고, 이중섭은 게·아이들·복숭아·학·물고기·해·달 등이 한데 어울린 무릉도원을 즐겨 그렸다.

로스코와 이중섭은 그들 삶의 비극성 때문에 그 예술이 위대한 게 아니라, 그들이 위대한 예술을 추구했기 때문에 삶에 비극성이 생겼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모든 ‘아닌’ 것들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는 타협을 싫어하기 때문에 때때로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상황도 초래하지 않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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