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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실에 '빤쓰'를 넣었다!

정로즈 2018. 8. 15. 11:35


[김정운의 麗水漫漫] 냉동실에 '빤쓰'를 넣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14/2018081403619.html

  • 조선일보                         

  • 김정운 문화심리학자·나름 화가



  • 나이 탓에 단어도 입에서 맴돌고 세탁기·냉장고 착각해 실수 연발
    '100세 시대' 맞게 구불구불 살아야


    김정운 문화심리학자·나름 화가
    김정운 문화심리학자·나름 화가


    자꾸 까먹는다. 글을 쓸 때, 사람 이름이나 개념이 기억나지 않아 한참을 고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에 경험한 '냉동실의 빤쓰'는 진짜 최악이다. 세탁기에 넣는다는 것을 냉동실에 넣어 둔 것이다. 언제 넣었는지 전혀 기억도 없다. 아내가 발견했다. 아내는 2주일에 한 번 정도 내려와 '현미밥'을 끼니별로 냉장고에 넣어둔다. 당뇨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냉동실에 '빤쓰'를 넣어 뒀다는 거다. 아, 냉장고와 세탁기의 공통점은 '문을 연다, 넣는다, 문을 닫는다'가 전부다. 환장한다.

    단어나 사람 이름이 생각나지 않고, 입안에서만 빙빙 도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설단현상(舌端現象·Tip-of-the-tongue Phenomenon)'이라 한다. '설단현상'은 현대 심리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미국의 윌리엄 제임스가 처음 공식적으로 서술했다. 심리학이 생길 때부터 다뤄진 아주 보편적 현상이란 이야기다.

    '설단현상'과 내 '냉동실의 빤스'는 질적으로 전혀 다르다. 나이 들수록 심해지는 '설단현상'은 심리학적으로 아무 문제 없다. 단어의 의미는 알고 있으나 단지 단어의 '음운적 재현(phonological representation)'에 문제가 생겼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단어나 사람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메타 인지(meta-cognition)'라고 한다. '설단현상'으로 기억나지 않는 것은 제스처를 많이 쓰면 기억이 더 잘 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요즘은 '연관 검색어'로 검색하면 된다. '연관 검색어'를 안다는 것은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증거다.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메타 인지는 '내가 모르는 것을 안다'와 같은 능력이다. 생물학적 노화에 따른 '설단현상'은 거꾸로 '메타 인지'가 더욱 활성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설단현상'은 어찌 보면 나이 들면서 얻어지는 세월의 선물이기도 하다. 세상에 가장 위험한 사람은 '자신이 뭘 모르는지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리는 유혹이다!'
    '다리는 유혹이다!' /그림=김정운


    자연에 '직선'은 없다! 섬은 '곡선'이다! 요즘 섬의 '미역창고(美力創考)' 공사 때문에 자주 배를 타며 얻은 메타 인지적 통찰이다. 모더니티의 가장 큰 오류는 '직선'에 대한 과도한 신념이었다. 시작은 철도였다. 산에 막히면 터널을 만들어 뚫고, 계곡이나 강으로 끊기면 다리를 만들었다. '직선'의 철도를 만들면서 인간은 스스로 신(神)이 되었다. 이제 강물 옆으로, 계곡을 돌아 나가던 아주 오래된 길도 '직선'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고속도로'다. 독일어로 고속도로를 뜻하는 '아우토반(Autobahn)'은 철도의 '아이젠반(Eisenbahn)'에서 가져왔다. '직선의 길'이란 뜻이다.

    철도에서 시작된 '직선의 모더니티'는 이후 인간의 주거 공간으로 옮아왔다. 식물의 곡선으로 장식하던 '아르누보'나 '유겐트슈틸'을 비판하며 '직선의 건축'을 시작한 이는 빈의 건축가 아돌프 로스였다. 이어 르코르뷔지에나 독일의 바우하우스는 '직선'을 기능주의 건축의 기본 철학으로 삼았다. 대한민국의 아파트는 바로 이 '직선의 건축'이 가장 경제적으로, 그리고 가장 폭력적으로 실현된 형태다.

    우리는 수백 년에 걸쳐 일어난 서구의 모더니티를 수십 년 만에 해치웠다. 대한민국은 '직선의 모더니티'를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가장 잘 실천한 나라다. '안 되면 되게 하라!'고 했고, '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더 이상 '직선의 시대'가 아니다. 자연을 지배하려고 만들어 놓은 '직선'은 재앙처럼 우리 후손에게 전해진다. 지구온난화와 같은 전 지구적 문제들의 근원에는 바로 이 '직선의 모더니티'가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견디기 힘든 계층 간, 세대 간 대립 또한 직선의 압축적 성장이 남겨놓은 모순이다.

    기능주의 건축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때, 빈의 또 다른 건축가 훈데르트바서는 스스로 신이 되고자 했던 모더니티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다. 그는 '직선은 무신론적이며 비도덕적이다(Die gerade Linie ist gottlos und unmoralisch)'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착한 곡선(gute Kurve)'을 회복하지 않으면 인간 문명의 미래는 없다고 주장했다.

    섬의 내 미역창고에 가려면 그야말로 산 넘고 물을 건너야 한다. 섬에 다리가 놓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자주 한다. 그러나 섬에 다리가 놓이면 더 이상 섬이 아니다. 다리는 그저 익숙한 '직선의 유혹'일 따름이다. 내가 섬에 들어서는 순간 그토록 마음이 평온해지는 이유는 섬의 '착한 곡선' 때문이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해안선을 따라 걸으며 나를 괴롭혔던 모든 문제가 바로 이 '직선'과 관계되었음을 깨닫는다. 참 치열하게 살았다. 부딪히면 뚫었다. 안 되면 되게 했다. 무슨 일이든 맡기면 해냈다. 그러나 내 직선적 행위가 타인에게 상처가 되는 줄은 전혀 몰랐다. 내가 타인에게 입힌 상처는 어느 순간 내 상처로 돌아왔다.

    이제는 좀 천천히 가도 된다. '직선의 모더니티'는 평균 수명이 채 50세도 안 되던 시절의 이데올로기다. 빨리 죽으니, 서둘러 가야 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재수 없으면(?) 백 살까지 산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에는 '하면 된다'가 아니다. 되면 하는 거다! 구불구불 돌아가며 살아야 동화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거다. 부딪히면 돌아가는 '곡선'을 심리학적으로는 '관대함'이라 한다. 오늘날 한국인들이 가장 못하는 거다. 이렇게 '곡선의 섬'에서 '직선의 삶'에 관한 메타 인지적 통찰을 얻는다. 그나저나 꽁꽁 얼어붙은 '빤쓰'는 참으로 설명이 어렵다. 많이 걱정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14/201808140361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