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나의 시

가을비 오는 간이역에서

정로즈 2010. 3. 17. 18:51

 

 

 

가을비 오는 간이역에서

정세나

 

 

그리운 얼굴

다 젖겠다.

 

비를 맞고 서 있는 은행나무

완행열차가 덜커덕 거리며

빗물을 쏟아놓고

들녘 헐렁한 몸짓의 코스모스가

기차를 따라가며 손을 흔든다.

 

축축한 어둠이 기웃거리는

대합실

답답한 고장난 공중전화

금이 간 유리창 밖에서

설레어 빨갛게 피던 맨드라미가

흠뻑 젖어 푸르죽죽하다.

 

쉬엄쉬엄 오는

가을비

노랑 잎 끌어안고

두런두런 얘기하는 은행나무

오지 않을 사람인 줄 알면서도

기다리는 간이역,

가을비에 젖으며 빗속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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