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오는 간이역에서
정세나
그리운 얼굴
다 젖겠다.
비를 맞고 서 있는 은행나무
완행열차가 덜커덕 거리며
빗물을 쏟아놓고
들녘 헐렁한 몸짓의 코스모스가
기차를 따라가며 손을 흔든다.
축축한 어둠이 기웃거리는
대합실
답답한 고장난 공중전화
금이 간 유리창 밖에서
설레어 빨갛게 피던 맨드라미가
흠뻑 젖어 푸르죽죽하다.
쉬엄쉬엄 오는
가을비
노랑 잎 끌어안고
두런두런 얘기하는 은행나무
오지 않을 사람인 줄 알면서도
기다리는 간이역,
가을비에 젖으며 빗속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