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나의 수필

느티나무에 대한 단상

정로즈 2010. 3. 31. 15:09

느티나무에 대한 단상(斷想)

                                   정 세 나

 친구가 자영하는 야생화 농장을 찾을 기회가 있었다.

연옥(煉獄)같은 도심을 벗어나 시골 야산의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야생화 농장은 친구의 소박한 심성처럼

소담하고 아늑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농장을 들어서니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야생화들이 마치 어린 아이들처럼 크고 작은 화분에 담겨져 있는 자태가 귀엽다 못해 앙증스런 느낌까지 들었다. 이들 야생화의 모습과 표정들이 활짝 웃고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고개를 떨군 채 꽃망울을 힘겹게 메달고 있는 것도 있어 인간세계나 식물세계에 있어서도 완벽한 형평과 균형이 평등한 안식이란 없는 것이구나 하는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 농장의 한쪽에서 어린 나무 가지들이 철사줄 동여매인 채 있는 어린 느티나무를 발견하고 썸뜩함 같은 것을 느낀 것은 내 철없는 소심함 때문이었을까.

넓고 투박한 그러나 한껏 질박한 멋을 부린 도자기 화분 가운데 서서 철사줄에 동여매인 채 키를 낮추고 있는 어린 느티나무를 보는 순간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가련함 아니 슬픔같은, 아니 강제된 구속의 수난같은 애처로움, 그것도 아닌 뭐라 정확히 꼬집어 설명할 수 없는 숱한 상염들로 내 몸까지 동여매는 것같은 압박감에 휩싸이고 있었다.

                             분재란 대체 무엇인가?

                             나는 새삼 이런 가당치도 않는 의

                             문과 의구심에 빠져들었다.다른 것은 몰라도‘분재’란 분명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한 취향으로서 그 존재가 이미 공인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기에 분재 한 그루에 억대를 호가하는 진귀하고 값진 분재도 있지 아니한가.

 그런 분재를 두고, 아니 친구가 자영하는 야생화 농장의 분재를 보며 나는 왜 실없는 의문을 갖는 것일까.그것은 아무래도 내가 지니고 있는 미적(美的) 감각과 판단 그리고 그 가치에 대한 이질적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같은 내 의문은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나 가치가 나만이 빗나간 것인가 하는 또 다른 의문을 갖게 했다.

본론으로 돌아가 문제의 느티나무는 우리나라의 수목들 가운데 그 수명의 장구함과 그 가지와 숲의 무성함과 장중한 체구로하여 옛부터 시골 마을 어귀에 한 마을의 수호(守護)와 안식(安息)의 상징으로서 지금도 전국 곳곳에 그 자태를 뽐내고 있는 나무다.

 그러한 느티나무가 한낱 좁은 도자기 화분에 그것도 철사줄에 동여매여진 채 심어져 있다는 것은 아름다움이라는 관상의 목적 못잖게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는 것은 소심한 나만이 갖는 지나친 감상벽 때문일까.

이를테면 부자유스런 사랑 즉 자유가 없거나 부당하게 제한된 사랑에도 온전한 사랑의 아름다움이 존재하고 가능한 것일까. 또 화분의 느티나무처럼 구금과도 같은 강제된 생육과 제한된 환경에서의 사랑도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나의 의문은 또 다른 의문을 낳고, 그 의문은 분재의 느티나무를 통해 끊임없이 이어져 나를 동여매 압박했다. 대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언덕에서 혹은 동구어귀에서 높은 하늘을 이웃하여 아침에는 햇살을, 일몰 무렵에는 고운 노을을 바라보며, 여름 한때에는 소나기에 몸을 씻고 겨울에는 눈보라 속에서 봄을 기다리는 설레임을 간직하기도 하는 야생의 느티나무들. 이런 느티나무와 온실 속 분재에 담겨진 느티나무와는 그 삶과 아름다움이 어떻게 다를까.

 나는 친구의 야생화 농장에서 본 분재된 느티나무에서 두 가지의 지울 수 없는 숙제를 갖게 되었다. 그 하나는 인간의 욕구에 의한 강제된 생육이 과연 나무에도 유익한 환경일까 하는 의문이고 또 하나는 축소지향의 인위적 형상이 우리에게 진정 어떤 친숙과 아름다움을 주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나의 해답과 결론은 간명해졌다.분재된 난쟁이의 느티나무는 자신의 고향이요 안식처였던 자연의 품속으로 돌아가 살게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럴 때 나 역시 자연의 품속을 찾아가 내 답답한 가슴을 활짝 열

고 더 크고 더 넓은 느티나무의 푸르른 그늘에서 나만의 사색을 마음껏 펼쳐 아름다운 자연을 화폭에 담고, 인간이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자연의 신비를 한편의 시에 담아 그 절제된 시편 속에서 아름다운 한편의 수필을 술술 풀어내는 여유를 누리고 싶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가장 자연스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새삼 해보면서....

 

                                                    2005년 계간 <문학예술 봄호>

 

'정세나의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유의태 약수터 오르는 길에서  (0) 2014.11.18
비진도에서  (0) 2013.02.01
연꽃이 나에게 말을 한다.  (0) 2012.02.27
물빛의 이상과 과제  (0) 2010.05.11
느티나무에 대한 단상(斷想)  (0) 2010.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