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나의 수필

물빛의 이상과 과제

정로즈 2010. 5. 11.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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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빛’의 이상과 과제

                                                                                정 세 나

   그림을 그릴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색채이다. 그림에 있어 채색은 곧 또 다른 하나의 언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림에 있어 색채의 중요성은 피카소가 20대에 청색을 즐겨 썼다해서 당시의 경향을 가리켜 ‘청색시대’로 불려지고 있다.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는 사물이 지니고 있는 보이는 그대로만을 그리는 화가로 널리 알려져 왔지만 그의 만년의 그림에는 실재에는 없는 갈색이 많이 늘어나고 있음을 가리켜 미술평론가들은 인생의 원숙한 가을 빛깔이 그림에 자연스럽게 투영된 것이라고 보았다.

 

    화가 쿠르베가 만년에 즐겨 선택한 갈색은 고급스런 색도 아름다운 색도 또 사람의 눈을 잡아 끄는 색깔이 아닌 평범하면서도 겸손하며 드러나지 않은 색으로 알려지고 있다.

 색은 비단 그림이나 화가의 개성에서 잘 드러나는 특징일 뿐 아니라 국가와 민족에 있어서도 남다른 상징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미국인들은 적색과 황색 그리고 청색을 좋아 하나 게으름을 상징하는 갈색은 싫어한다고 한다. 또 캐나다는 재물을 상징하는 녹색이 인기이고, 프랑스인들은 하늘색과 흰색 등을 좋아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청색과 진회색 등을 선호하며 유럽국가 가운데는 검은색을 싫어하는 곳이 많다.

  일본인이 좋아하는 색은 흰색과 청색 초록색 금색 등이지만 특히 청결과 금욕 등을 상징하는 흰색을 매우 좋아한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흰색이 ‘죽음을 상징한다’며 싫어한다.

   색채의 선호는 각 나라의 상품과 상표의 색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미국을 대표하는 버드와이저, 맥도널드, 코카콜라 등의 상표들은 모두 붉은색을 기본색으로 채택하고 있다.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붉은 색을 이용해 마케팅에 성공한 사례들이라 하겠다.

    코닥필름은 노란색이다. 그러나 후지필름은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초록색으로 노란색의 코닥필름을 제치고 일본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화가마다 즐겨 쓰는 색깔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반 고흐가 가장 즐겨 쓴 색깔은 황색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그림에 있어 색채는 단순한 의미나 개인의 취향을 넘어 확고한 전통을 지니고 있는 경우도 많다. 런던 내셔널 미술관에 전시된 그 많은 중세 여인의 초상 가운데 검은 색의 눈동자나 머리칼이 없다고 한다.

    유럽 사람들의 금발과 흰 살결 파란 눈동자를 가리켜 블론드라 한다. 이런 블론드의 선망은 기독교시대까지 계승되어 성모마리아나 천사를 그릴 때는 금발에 파란 눈을, 악마를 그릴 때는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그리는 것이 관례가 돼있었다.

   미술사를 보면 고대 희랍에서도 이미 블론드를 선망하여 아폴로나 바카스신이나 알렉산더대왕같은 영웅의 머릿빛은 금발이며 눈동자는 파란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로마 귀족들은 북방으로부터 금발의 가발을 수입해 썼을 정도로 색깔에 관심이 높았던 모양이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 색채나 채색에 있어 ‘물빛’의 황상에 빠져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정작 ‘물빛’이 어떤 색채이냐고 묻는다면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을 만큼 그 빛깔에 대한 확실한 표본이 없다.  사전적 해석으로는 ‘물감의 빛깔’ 또는 ‘물의 빛깔’ ‘물과 같은 빛깔, 곧 엷은 남빛’이라는 풀이이다. 그러나 물은 빛깔이 없는 것이다.

   빛깔이 없는 ‘물빛’을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이상(理想)을 바라고 꿈꾸는 상상의 소망같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색채, 실제로 그림 속에서 불가능한 채색을 생각하고 갈구하는 것, 그것이 곧 예술이 지닌 무한의 신비요 누구도 이룰 수도 없는 영원한 과제는 아니기를 곰곰 생각하게 된다.

 

                                       (2006년 영호남수필 제16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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