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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졸업생은 6명, 모두가 울었습니다

정로즈 2011. 1. 13. 18:03

 

인사도 하지 않고 먼저 말 거는 법이 없던 아이들… 학기가 바뀌면서 변했습니다
그런 애들이 졸업하던 날…
"2년동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먼저간 남편에게 면목이 섰어요"
한 학부모는 울먹였다

오늘은 우리 나섬 고등학교의 5번째 졸업식입니다. 폭행사건으로 퇴학을 앞두고 온 아이, 무슨
사연이 많은지 좀처럼 입을 떼지 않았던 아이,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 '왕따'당했던 아이들….
그런 아이 6명이 졸업장을 받는 날입니다. 망나니처럼 학교를 들쑤시던 아이들이 오늘따라 고
개를 숙이고 조용히 앉아 있습니다.

막상 자기들을 다독거려주었던 학교라는 보호막을 떠나는 게 어딘지 아쉬움이 남는가 봅니다.

졸업생이 단 6명이라 재학생과 학부모, 손님들이 둥글게 마주 보고 앉도록 자리를 만들었습니
다. 서로 자기의 목소리로 정감 나게 말하고 듣도록 마이크도 없앴습니다. 아이들을 그동안 돌
봐준 연극·농사 선생님 등 10여 분도 참석해 졸업하는 아이들과 정겹게 악수를 나눕니다.

졸업장을 받는 순서가 되었습니다. 6명의 졸업장 내용은 모두 달랐습니다. 어느 대학의 복지학
과에 합격한 병호의 졸업장은 이랬습니다. "훌륭한 복지사가 되기를 바라는 나섬 가족의 사랑
을 담아 졸업장을 드립니다." 만화학과에 진학하는 진수에게는 "꿈과 사랑을 키울 수 있는 만화
가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취업하기로 한 동재에게는 "밝게 웃고 꾸준히 노력하여 씩씩한 사장이 되라"는 우리의 바람을
전했습니다. 우리 학교는 졸업식은 있어도 입학식은 없는 학교입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한
두 달이 지나면 한두 명씩 식구가 늘어납니다. 다른 학교에서 퇴학 위기에 놓여 있거나 학교생
활에 적응 못해 학업을 중단해야 할 처지에 있는 학생들을 위탁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 학교의 이름인 '나섬'은 '나눔과 섬김'의 준말이며, '나 스스로 선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전체 학생 수는 20명입니다. 선생님 10여 분이 아이들의 '새로운 시작'을 돕는 경북 안동의 위탁
형 대안고등학교입니다.사랑받지 못해서 온몸으로 우는 아이들, 그렇게 울다가 지친 아이들이
우리에게 옵니다.

세상과 문을 닫고 자기 안으로 깊이 숨으려는 아이도 있고, 잠시도 집중하지 못하고 서성대는
아이도 있고, 수시로 씩씩거리며 누구에겐가 화풀이하려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누군가 자기에
게 제대로 관심을 보이기 전에는 어디에도 관심을 갖지 않기로 작정한 아이들 같습니다.

저마다 이런저런 문제를 안고 오는데 그 시작은 아마도 대체로 부족한 사랑에 있는 것 같습니
다. 배고픈 사람은 배를 채워야 무엇을 할 수 있듯이 아이들에게는 반드시 채워져야 할 무엇이
있나 봅니다.다른 고등학교처럼 국어·영어·수학도 가르치지만, 컴퓨터·미용·연극·생활미술·레크
리에이션·농사 같은 대안 교과목을 중점적으로 가르칩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처음엔 별 의욕을 보이지 않습니다. 이번에 졸업하는 아이 서넛이 폭력사건에
연루돼 경찰서를 들락거렸습니다. 길거리에서 자기들을 무시하는 것 같아 때렸다는 것입니다.
선생님들은 이 아이들과 밥도 같이 먹고 같이 놀러 다니며 칭찬도 해주고 함께 울기도 했습니
다.



 

아이들은 학기가 바뀌고 학년이 바뀌면 조금씩 변화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인사도 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먼저 말을 거는 법이 없던 아이도 이젠 예쁘게 웃습니다. 지난해
겨울방학 동안 모두 금연을 약속했는데, 한 학생의 "성공, 아자!"라는 문자가 날아왔을 때 선생
님들은 기뻐했습니다. 이런 아이들이 드디어 졸업장을 받게 된 것입니다.

송사와 답사는 전 학생이 한마디씩 했습니다. "미울 때도 있었지만 형들이 있어서 학교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어요. 저도 앞으로 지각하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사랑합니다." 재학생 대표부터
차례대로 한마디씩 인사를 건넸습니다. 한 여학생은 가슴이 벅찬지 자기가 말할 차례가 돼서도
계속 울기만 했습니다.

졸업생들의 송사는 좀 길었습니다. "여기 올 때는 막장에 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될 대로 되
라는 기분이었습니다. 이 학교가 아니었으면 제가 어떻게 대학교에 갈 수 있었겠습니까.
수업시간에 너무 떠들어서 죄송하고 여기서 공부한 2년은 참 행복했습니다." "처음 하는 말인데
엄마 아빠 사랑합니다."

졸업생들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연발해 듣는 제가 민망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대견했습
니다. 모두 좋은 것만 기억하고 헤어지게 돼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학교 명칭처럼 자신이 스스
로 사랑하고 설 수 있는 힘이 생겼다면 저와 선생님들이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축사에 나선 한 학부모는 일어서자마자 울기부터 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우리 아이에게 기적
이 일어났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합니다. 먼저 간 남편에게 면목이 선
것 같습니다."

준비한 떡국이 식어 가는데도 아이들은 저마다 껴안고 아쉬움을 달랩니다. 졸업생 중 가정사정
때문에 취업하기로 한 동재는 "첫 월급을 타면 학교에 오겠다"고 후배들과 손 걸어 약속하고 있
었습니다. 교문을 나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자꾸 눈에 밟힙니다.
(나섬학교 졸업식은 작년 12월 17일)

           ▲ 신효원 나섬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