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제 답 사

사천 다솔사를 찾아서

정로즈 2022. 7. 18. 16:26

사천 다솔사를 찾아서

 

2018년 4월16일 전형적인 봄날에 re_Life 에서 자치활동으로 경남 사천 다솔사를 갔었다.

봉명산 군립공원이여서 인지 다솔사 입구에서 부터 다솔사를 찾아가는 길 양편으로

80년묵은 둥치가 굵고 쭉쭉 뻗은 푸른소나무 숲길이 재공하는 상쾌한 산소를 들이쉬면서

미새먼지로 가득한 나는 미새먼지를 적시는 땀방울을 훔치 도착한 다솔사.

다솔사는 대구 팔공산자락에 있는 부인사처럼 일주문도 사천왕도 보이지 않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대신하였다.

역사의 변천을 들여다보면서 다솔사가 주는 고색창연한 역사를 가슴에 담으니 다솔사가

얼마나 소중한지 내 작은 가슴에 담기엔 너무나 벅찼다.

다솔사는 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의 말사이다.

서기 511년 신라 지증왕12년에 범승 연기 조사가 창건하여 영악사로 명하였고 636년 선덕여왕 때

다솔사로 개칭하였다가 676년 문무왕16년에 의상대사와 도선국사를 거쳐 영봉사로 고쳐부른 뒤

신라말기에 국사 도선이 중건하고 다솔사라고 하였다고 한다. 1326년(충숙와 13년)나옹(懦翁)이

중수한 뒤에도 여러 차례 중수하였으며, 임진왜란 당시 전화로 소실되어 폐허가 된 것을 1686년(숙종12년)에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또 대양루를 제외하고1914년에 있었던 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듬해 다시 새운

것이다. 대양루 . 적멸보궁. 나한전. 천왕전. 요사채를 비롯한 10여 동의 건물이 남아 있다.

 

대양루(大陽樓)1749년(영조 25)에 세워져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는 2층 맞배집으로 건평이

106평에 이르는 구모가 큰 건축물이다.는 2층 누각이다.경남유형문화재 제83호로 지정되어있다.

2층으로 되어있고아래. 위층의 높이가 13m이고 36개의 큰 기둥이 전채를 떠받치고 있다.

 

본래는 대웅전이라고 하였다가 1979년에 웅진전에 모신 아미타여래불상

 후불탱화 뒤 벽에서 108개의 진신사리가 나오자대웅전을 적멸보궁으로 개축한뒤

불사리를 적멸보궁에 모신 대웅전을 적멸보궁으로 1980년에 대체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사찰에서나 볼 수 있는 대웅전은 없고 적멸보궁이 대웅전자리에 있어서 나는 의아했고

또 적멸보궁이 보이도록한 투명한 창 아래 열반에 드신 부처님 와불이 있고 와불 위쪽 유리창을 통하여

사리탑이 보이게 한 독특한 건축양식이어서 신비롭기까지 했다.

 

 

   

 

 

 

 

 

웅진전과 극락전이 기역자로 자리매김이 되었다.

 

 

 

 

 

안심료는 승려들의 숙소이며 1930년에 지어졌다.

일제강점기에 한용운이 수도하던 곳이며 항일운동의 거점으로 민족정신을 일깨운 곳이다

만해 한용운이 '독립선언서' 초안을 작성한 곳이며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 '황토기'집필 한 곳이기도 하다.

또 다솔사는 우니나라 茶문화의 발원지로 성지이기도 하다.

적명보궁 윗편에 차밭이 있으며 스님들이 즐겨드시는

죽도차로 유명하였으며, 반야도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저 있다.

1977년에'한국다도회'가 결성되었다.

다도문화와 문학의 성지같기도 한 다솔사는

요란하지도 않고 아늑하며 중건하고 복원하면서도 화려하지않고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소박함이 좋아서 다시 또 와서 수도하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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